[데스크 칼럼] 그 많은 장학금은 어디로 갔을까

박정임 경제부장 bakh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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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번번이 땅을 파셨다. 일찌감치 자녀 둘을 서울로 유학 보낸 결과니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1년 농사 꼬박 지어봤자 일곱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서울서 학교 다니는 두 아이의 생활비며 등록금 마련이 쉽지는 않았을 터다. 어느 해 겨울밤 시골집 얇은 벽 너머로 걱정 어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대학생이 둘이나 됐으니 땅 한자리 더 팔아야겠죠?”하자 “하는 수 없지”하는 짤막한 아버지의 답변이었다. 1987년 1월 남동생이 대학에 합격해 부모님의 기쁨이 클 거란 생각만 했지 등록금 걱정은 못했던 거다. 그러고 보니 은대리 논도 동막골 땅콩밭도, 지금은 주유소가 들어선 3번 국도변 잡종지도 어느새 남의 것이 됐다.

최근 두 딸 아이가 푹 빠진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을 보는데 여주인공 홍설(김고은 분)의 처지가 여간 딱한 게 아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수강신청 시즌이면 전쟁을 치르듯이 홍설 역시 수강신청에 목숨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공부가 특기인 홍설이 수강신청에 매달리고 조별과제임에도 절박한 심정에 모든 걸 혼자 준비해 가는 건 학점을 잘 받아야 장학금을 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휴학해야 하는 소위 ‘흙수저’ 학생이기 때문이다. 휴학과 아르바이트, 복학을 반복하며 20대 후반이 돼서야 겨우 졸업장을 받아드는 수많은 우리네 대학생의 처지를 대변해 주는 듯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70~80년대 우리 집엔 팔 땅이라도 있었던 거다. 늦은 밤 부모님의 대화를 들은 이후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학점 제한도 있었고 학과장 추천도 필요했던 것 같다. 자식 빚 지우기 싫다시는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도 일이었다.

하여튼 사립대학 등록금이 60~70만원 정도일 때 전액은 아니지만 두 학기를 대출받아 냈는데 졸업 후 두고두고 짐이 됐다. 그래도 그땐 지금처럼 취업이 어렵지 않은 시절이었다.

등록금 대출은 더는 일부 학생의 얘기가 아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대졸자 1천374명을 대상으로 학자금 대출 경험에 대해 설문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대졸자 10명 중 8명(75.1%)이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실제 학자금 대출 횟수는 평균 5번이었고 금액만 1천471만원에 달했다. 자칫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빚을 갚으려 눈높이를 낮추거나(64.9%) 진로를 변경(58.2%)해 취업하고 있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했으니 행복할 리 없다.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대학 진학은 선택의 문제인 만큼 당연히 학생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하는 세태를 문제 삼기도 한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때 학벌과 스펙 타파를 외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한국 사회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고졸과 대졸의 큰 임금 차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대학 진학이 필수처럼 된 상황인데도 1년에 1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은 아르바이트나 학자금 대출, 혹은 휴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교육부는 지난 19일 올해 국가장학금 규모를 지난해보다 545억원 늘어난 3조6천545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연말에는 국가 장학금을 늘리는 등으로 ‘반값 등록금’을 실현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찌 된 일인지 등록금 때문에 휴학한다는 학생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등록금 탓에 허리가 휜다는 부모들의 하소연도 여전하다. 이들은 각종 제한이 뒤따르는 장학금 지원이 아니라 절반으로 줄여진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싶어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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