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약(空約)을 공약(公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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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사회는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적 전통의 환경 속에 충(忠)과 효(孝),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인(仁)·의(義)·예(禮)·지(智)의 사단지심(四端之心)-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 등의 단어에 익숙하였고, 어질고 착한 이를 본(本)으로 삼으며 이웃을 귀히 여기고 정(情)을 나누는 삶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존중의 전통적 가치관은 빛을 바래고 물질만능주의(Mammonism)에 휩쓸려 가치관의 혼돈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혼돈을 바로 잡고 화합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이 사회의 지도자, 즉 정치인들의 책무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적어도 정치(政治)의 사전적 의미가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면 말이다.

허나 삶에 찌들고 희망마저 잃어가는 국민들에게 분열과 대립, 갈등의 씨앗마저 뿌려서야 되겠는가 싶다. 무릇 무엇인가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근본부터 살펴보고 바로잡아야 한다.

십중팔구는 누구나가 당연시하는 그 무엇인가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제도권에 뛰어들면서 하게 되는 국민들과의 약속이 있다. 그것이 공약(公約)인데, 이 공약은 단순한 국민과의 약속이 아니라 출마하는 이유이자 목적이고 계약인 것이다.

 

덴마크 국회의사당을 가보면 승용차를 찾아보기 어렵고 자전거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나라 국회의원의 직업 또한 다양하다고 한다. 본인의 직업활동 등을 통하여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입법의 필요성에 의해 그것을 공약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임기를 마치면 본업으로 되돌아간다고들 한다. 이것이 정치에 임하는 본이자 공약의 실체일수도 있는데,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은 이 공약을 의례히 공약(空約)으로 이해하고 이를 인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현재 우리나라 선출직 정치인은 국회의원 300명을 포함하여 시·도지사, 시·군·구청장, 광역·기초 의원, 교육감, 교육위원 등 총 2,600여명이 넘는다. 이들은 출마의 변을 통하여 각종 공약을 하게 된다. 개중(個中)에는 무책임하게 던진 공약으로 인해 꼭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되돌아가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선거때만 되면 정부는 정부대로 많은 국고를 투입하여 투표율을 높이고자 애를 쓰지만 투표율은 그리 나아지질 않는다.

국민들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그 많은 출마자들을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된지 오래고 선거공보를 통하여 얻게 되는 정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 선택을 위한 잣대도 변변치 않고,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마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끼며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야도(野都) 인천이라 불리우고 인천의 표심(票心)이 전국선거의 바로미터라 회자되는 우리 인천의 투표율이 최하위권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모든 출마자의 공약 이행계획(履行計劃)과 이행결과(履行結果)를 선관위에 등록(登錄)하여 심사(審査)하고, 그 결과만을 공약으로 사용하게 하며, 이후 재출마시에도 이전의 공약이행결과와 당해 공약이행계획을 같이 공표(公表)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공약(公約) 자체가 투표의 잣대가 되고 희망의 싹이 되어 투표율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선거가 투표가 하나의 축제가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안광호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총괄과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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