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제일 잘 사는 동네인 영통에서 살며 활동하는 정치인의 책 제목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등불처럼 밝혀준 “달동네 화장실 문고리” 사건을 빼 놓고는 내가 추구하는 정치도 행정도 없을 것이기에 기꺼이 이 제목을 선택했다.
서울시장 비서관으로 일하던 1992년 여름의 일이다. 그 당시 서울 시내에 있던 64군데의 달동네를 한 군데도 빼먹지 않고 일일이 방문 했는데, 그 중 지금은 살기좋은 아파트 타운으로 변한 S동 달동네 주민들을 만났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 분들께서 호소하는 민원이 너무나 소박해 내 가슴이 오히려 먹먹했다. “화장실에 문고리가 없어요. 문고리 좀 달아주세요.”
화장실에 문고리라니? 처음에는 무슨 말씀인가 의아해했다. 알고 보니 달동네 집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고 마을 어귀에 마련된 간이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화장실에 문고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침이면 20-30명이 줄을 서서 신문도 보고 얘기도 나누는데, 문고리가 없으니 안에서 볼일 보시는 분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구청장님들께 전화드려서 바로 문고리를 달도록 조치했다. 다음 주말 시장님 모시고 다시 방문한 그 S동의 할머니는 90도로 인사하며 기뻐하셨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마에 주름살이 펴지는 것 같아”라고 말씀 주셨다.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작은 단돈 100원도 되지 않는 문고리에 주름살이 펴질 정도로 기뻐하시는데, 도대체 이 땅의 정치와 행정은 뭘 하고 있었는지, 공무원인 나는 또 뭘 하고 있었는지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늘 정치와 행정은 가장 어려운 분들의 이마에서 “주름살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해왔다. 30여년 공직생활의 지표가 된 것이다. 그 뒤에도 이런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그 중 또하나 기억나는 것이 한센촌의 한글교육이다. 경기도 북부에는 한센인 마을이 여러 군데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한센인들의 가장 큰 소망은 뜻밖에도 작고 소박했다.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글이라니? 마치 화장실 문고리가 없다는 말씀에 의아해 했던 것처럼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한글을 모른다는 말씀에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알고 보니 어릴 적 초등학교 다니기도 전에 한센병이 발병해서 학교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신 분이 많이 계신 거였다. 한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읽고 쓰기가 안 되었던 것이다. 한 할머니께 여쭤봤다. “한글 배워서 뭐 하시게요?” “응, 가족들에게 편지 쓰려구.” 가슴이 아팠다.
경기도청에서 강사를 파견해 한글교육을 시켜 드렸고 교육과정이 끝난 다음 할머니는 군데군데 맞춤법이 틀린 편지를 도지사님께 보내왔다. “한글공부를 하게 해 주셨어 고맙니다”라고 말이다. 이제 가족들에게 편지로나마 안부를 전하고 물을 수 있게 된 할머니를 생각하니 펑펑 울어버릴 만큼 가슴이 시려왔고, 마치 달동네 화장실 사건의 데자부를 보는 듯했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내 책의 부제는 “박수영의 생활정책”이었다. 우리 정치와 행정은 이제 사람들의 생활로 내려와야 한다. 더 이상 구름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이땅의 정치와 행정은 이념투쟁의 수단이 되어서도, 고담준론의 장이 되어서도 안된다.
100원도 안되는 문고리와 누구나 다 알 거라 생각했던 한글교육이 할머니 이마의 주름살을 펴 주었듯, 더 낮게 더 뜨겁게 현장으로 다가가고 내려와야만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4류정치가 적어도 2류정치는 되어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을까.
박수영 새누리당 수원정(영통구)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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