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도는 종전의 시각과는 달리 영조와 사도세자 간의 부자 관계를 조명하여 가족 간의 소통과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영화였다. 영화는 국왕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로 아들을 어떻게 잘못(?) 가르치고 있는 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영조의 극단적이고 강박적인 성격, 다혈질적인 성격의 조급함이 촉망 받던 영재 아들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영조는 아들에게 대리청정을 하도록 하지만 실제로는 정사에 모두 간섭하면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하고, 잘못된 경우 모두 아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너는 존재 자체가 해악이다.”, “임금 자리 못해먹겠다.”고 하는 것은 협박이고 참기 어려운 모욕이다.
강박적 성격장애가 아들에게 투사되어 ‘비뚤어진 사랑’을 넘어 아들을 의심하고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중록 등에 영조가 아들 세자를 ‘꾸짖었다’는 기록들이 자주 보이고 있다.
이는 영조 자신이 태생적인 열등감과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겪으면서 강박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영조가 선대 왕릉인 명릉(明陵) 행차를 했을 때 비오는 날씨를 아들 탓으로 돌리며 동궁의 가마를 돌아가게 하여 심한 모욕을 준 것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 간의 소통과 가정교육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사례이다. 오늘도 부모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이에 못 미치는 자녀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가늠하게 한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어가면서 “진정 중요한 것은 예(禮)보다 사람이고 정이다.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다.”는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맹자(孟子) 공손추(孔孫丑)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가 생각난다. 중국 송나라 때 어느 농부가 모내기를 한 후 자기 논에 가보니 자기 벼가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아, 벼의 싹을 잡아 올려 크게 보이게 하고 자랑하였다. 하지만 다음날 벼 싹들은 말라 죽어버리고 말았다.
혹여 오늘도 부모들이 ‘발묘조장(拔苗助長)’의 어리석음으로 자녀들을 교육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자기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지나친 간섭과 규제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모판의 모 싹들이 자생력을 갖고 스스로 성장 발육하게 도와주어야 하듯이 자녀들이 스스로 성장력을 갖도록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캥거루 부모나 헬리콥터 맘이 결코 좋은 부모는 아니다. 자녀에 대한 욕심과 지나친 기대를 버리고, 순리에 맞게 자녀를 지켜보며 도와주어야 한다.
‘助苗長, 苗卽槁(조묘장, 묘즉고)’ 싹을 억지로 자라게 하면, 그 싹은 말라 죽어 버린다. 자녀들이 스스로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김유성 청덕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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