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감사 기도

1.jpg
지난 10월 13일 오전 11시 28분 휴대폰 문자 알림 신호가 왔다.

 

“아빠 아기를 잘 낳았어요. 3.25㎏ 이고 아들이에요.”

 

아들이 둘째를 낳고 보낸 문자이다. 감사기도를 드리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 어느새 아들이 두 아이에 아빠가 되었구나!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에 그렇게도 아빠의 가슴 조리게 하던 녀석이 잘 자라주고 좋은 배우자 만나 가정을 이루고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아들이 대견스럽고 감회가 새롭다.

아버지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장가를 안 간다고 근심을 하던 지인이 미국에 가서 아들 결혼식을 시키고 와서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초청해서 저녁식사로 답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드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좋으시죠?” “네 아주 좋습니다.”

내가 한마디 더 했다.

 

“첫 손 주를 보면 더 좋습니다. 둘 째 손 주를 보면 더, 더 좋고요.”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열어 아들이 근무하는 대학의 사이트에 들어가 아들의 설교를 보았다. 둘째를 낳은 그 다음 주 수요일 채플인 것 같았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짧은 편지 한통을 읽는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아 나는 너를 믿는다. 무엇이 옳고 그름은 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나이가 되었기에 네가 알아서 잘 하리라고 생각한다만 그러나 아빠의 간절한 기대와 소원은 네가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는 일생을 살아주길 바란다. 

아들아! 네가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하고 비참해 지는지 모르겠구나. 아들아 너는 나의 기둥이고 소망이다. 사랑한다. 믿음을,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는 아들이 되지 말아다오. 성실하고 정직한 아들을 둔 아빠가 되고 싶구나. 1996년 8월 12일 새벽 1시15분.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가.”

 

질풍노도와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며 부모의 가슴 조리게 하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새벽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기도하가다 마땅히 편지지가 없어 헌금 봉투를 대충 찢어 만든 편지지에 마음가는대로 적은 짧은 편지다. 아들 책상위에 올려놓았는데 19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편지는 아들의 성경책 갈피에 끼워있다고 한다. 

짧은 그 편지가 자신의 인생을 붙들어 주었는데 그 편지 글자 한자 한자 속에 담긴 아버지의 눈물과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메시지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 담긴 하나님의 눈물자국과 마음을 읽어보자고 하는 내용으로 설교했다.

 

인생은 일생이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폭을 버리고 다시 그릴 수가 있다. 작가는 글을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쓸 수도 있다. 수험생은 재수 삼수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일생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아무렇게나 살기에는 구원의 가치가 너무 아깝다.

후회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빠르다. 19년 전 아버지의 마음을 그렇게 힘들게 하던 아들은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철이 든 아들이 되었다. 그 아들의 아버지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 이순의 인생을 살고 있다.

19년 전의 아들은 제법 철이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하늘 아버지 앞에 철이 덜 든 아들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 19년 후에는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첫째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소원과 되어야지 하는 소원을 적어본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더 많아지지 말아야지. 또한 말수가 더 많아 지지 말아야지. 자리에 미련을 두지 말아야지. 권위적인 고집스런 사람으로 변질 되어 가지는 말아야지. 

가슴의 온기를 잃지 말아야지 하는 것과 둘째는 되어야지 하는 소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뜨거운 가슴과 마음이 되어야지. 철이 든 인생, 어른이 되어야지. 마음의 빗장을 활 짝 열고 살아야지.

 

반종원 목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