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국·보훈의 도시 ‘인천’ 가치 재창조

- 순국선열의 날에 즈음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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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1월 17일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가슴 아픈 날이다. 

전국에서 수많은 항거가 있었고 그중에는 의병활동으로 체포돼 “일본인이 주는 밥은 먹을 수 없다.”며 결국 아사 순국한 최익현 애국지사의 일화는 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정부는 이들의 희생을 길이기 위해 이날을 순국선열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최근 각종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 수준이 너무 낮아 우려를 낳고 있다. 인천 보훈담당 국장으로서 학도병들에 대한 소개로나마 청소년들의 호국정신 함양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인천에는 독립운동 및 국가수호시설로서 36개의 현충시설이 있다. 학도병과 관련된 시설로 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과 재일학도의용군 참전 기념비가 있다. 인천학도의용대는 6.25전쟁 당시 인천의 중학교 재학생 3천여명이 참전하여 200여명이 전사하고 현재 430여명만이 생존해 있다. 

그리고 재일학도의용군은 642명이 참전, 52명이 전사하고 83명은 행방불명되었으며 살아남은 일부는 일본으로 귀환하였으나, 242명은 ‘일본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임의 출국한 자’로 귀환이 거부되어 조국에 잔류하게 된다.

이들은 연고도 없는 조국에서 이산의 아픔을 안은 채 힘든 세월을 보냈고 정부는 1968년에서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여 보상해 주고 있다. 특히 재일학도의용군은 계급도 군번도 없는 신분으로 참전하여 인천상륙작전과 최대 격전장이었던 백마고지전투 등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이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들은 세월과 함께 점차 잊혀져갈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을 영원히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맥아더 장군이 남긴 유명한 이 말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몸은 죽어도 그 숭고한 정신은 이어져 계승되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하여 준비해야 할 몫이며 책무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행사장에서 만났던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오공태 단장의 “구국을 위해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는 사라지더라도 그 활동과 의미가 교과서에 기록되어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다면 더 이상 큰 바람이 없다.”던 탄식이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아려온다. 역사가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그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한 페이지로 교과서에 실리는 날을 학수고대해 본다.

 

보훈은 국가유공자들의 명예로운 삶을 위해 예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희생 위에 지켜온 조국을 국민의 단결된 안보의식의 기틀 위에 평화통일과 지속적인 번영을 통해 그들을 영원히 명예롭게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인천은 고려말 항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호국의 고장이며 개항기 외세의 표적이 되었던 곳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제1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등 지금도 북한의 끊임없는 무력도발로 국가안보상 중요한 요충지로서 그 역사적 의미와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하면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호국 성지일 것이다. 

이에 인천은 광복 70주년, 분단 70년 그리고 6.25전쟁 65주년인 올해 숙원사업이었던 보훈병원 건립 기공식을 기하여 ‘호국보훈의 도시, 인천’의 가치 재창조를 통한 호국보훈의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 앞으로 다양한 사업의 개발을 통해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 및 지원의 확대는 물론 시민들의 호국정신과 애향심을 고취해 나아갈 계획이다.

 

강신원 인천시 보건복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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