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연산군은 어떤 과일을 좋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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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었던 과일은 무엇일까? 정답은 감귤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감귤소비량은 14.3kg으로 포도, 사과 배 등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소비자들이 감귤을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달콤하고 상큼한 맛과 깎아 먹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때문인 것 같다.

 

연산군도 감귤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연산군 실록을 보면 풍랑으로 제주도산 감귤이 늦게 오자 기다리지 못해 파발마로 문서를 보내 “왜 감귤이 이제껏 진상이 되지 않는가를 물어보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고려사에 백제 문무왕 2년(서기 476년)에 탐라(지금의 제주도)에서 방물을 헌상하였다는 기록 등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감귤은 우리나라에서 꽤 오래전부터 재배됐던 것 같다.

 

조선경국대전에서는 감귤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부역을 면제해 주었는데, 그 당시 감귤은 매우 귀해 궁중행사나 왕 하사품으로 주로 쓰였다고 한다. 이렇게 왕실의 큰 관심을 받았던 감귤재배는 백성에게는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진상용 수량을 채우고자 감귤을 지나치게 징발하고 이를 어긴 자에게는 벌을 주는 까닭에 백성들은 감귤재배를 기피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감귤나무를 아예 뽑아버렸다고 한다.

 

연산군은 수박, 포도, 다래도 좋아했다고 하는데, 정월에 궁중의 과일을 권장하는 장원서에 명을 내려 수박을 올리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여름 과일인 수박을 겨울철에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과일 저장기술이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산가요록 등 우리나라 고전 식품서에는 과일저장기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여성이 최초로 쓴 한글로 된 식품서인 ‘음식디미방’에서는 “밀가루로 죽을 쑤어 소금을 조금 넣고 여기에 복숭아를 넣어두면 겨울철에 먹어도 제철과 같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연산군이 좋아했던 과일처럼 우리가 몰랐던 농업과 식품에 관한 고사(古事)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고전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번역해 오신 김영진 선생님(전 농림축산식품부 기획관리실장)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왕실 진상품으로 귀했던 사과, 감귤 등의 과일을 소비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절이다. 올해는 가뭄으로 걱정이 많지만 과일 성숙에는 기상조건이 알맞아 어느 해 못지않게 과일 맛이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철과일을 맛있게 즐길 수 있게 된 소비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런데 땀 흘려 애써 과일을 생산한 농가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은 것 같다. 한해 70만톤 정도 수입되는 오렌지, 바나나, 망고 등 외국산 과일과의 힘겨운 경쟁 때문일 것이다. 최근 10년간 국내 과일시장에서 수입과일소비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으나, 국내산 과일 소비는 정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수입과일에 대한 소비자 선호는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국산 과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내산 과일의 6차 산업화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현실은 과거 답습적인 홍보행사나 특색 없는 브랜드로 소비자의 입맛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 세계화의 무한경쟁에서 우리나라 과일만 예외일 수 있겠는가? 한국 과수농가들이여, 고전에서 조상이 남긴 지혜를 찾아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과일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가자.

 

박종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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