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인연으로 피운 아름다운 박물관의 꽃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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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中)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생각나는 초겨울이다. 연탄이 우리네 삶에 깊숙이 함께 했던 그 시절, 골목마다 수북이 쌓여있던 연탄재 속에서 아직도 열기를 머금은 채 벌겋게 달아 있는 연탄재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의 시는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존재로 살아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 되어보는 삶을 우리는 꿈꾼다. 자신의 몸을 재로 만드는 희생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는 연탄처럼 살아보는 삶을 말이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 현실에서 우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 것을 나누는 순간이 되면 인색해진다. 조건 없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이익을 먼저 계산한다.

 

그러나 여기, 자신이 소중히 아끼고 간직해온 집안의 가보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놓은 뜨거운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박물관의 기증자들이다. 경기도박물관 20년 역사 속에 이런 숭고한 뜻을 실천한 분들이 500여분이 넘게 계신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유물 기증자들의 숭고한 정신을 귀감으로 삼고, 선양하기 위해 11월 7일 경기도박물관은 <2015 경기도박물관으로의 초대: ‘인연으로 피운 경기문화의 꽃’>이라는 주제로 성대한 잔치를 기획하였다.

 

기증자 분들을 모시고 어떤 행사를 치를까? 행사를 위한 행사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생각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을 모시기에 정성스럽고 후한 음식 대접을 하고 싶었다. 우리말에 ‘먹는데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다.

먹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번 잔치에서는 유기농 농산물로 꾸린 식단을 통해 건강하고 영양가 있는 밥상을 차려 드릴 예정이다. 또 중요한 것이 뜻 깊은 선물이다. 

어떤 귀중한 선물을 드려서 박물관의 진심어린 감사의 뜻을 전달할 수 있을까 무척 고민했다. 여러 번의 회의 끝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모티브로 삼아 제작한 도자기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정성스럽게 구워낸 도자기가 모쪼록 기증자 분들의 마음에 들어, 집에 오래 두고 간직하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문화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경기도립국악단의 경기민요 공연과, 처용무 및 수제천 공연 등을 준비했다.

 

이번 기증자의 날 행사를 통해 기증자 분들이 자신들의 기증이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으며, 그 무엇보다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이었다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은 곧 박물관 기부문화 활성화의 첫걸음이며, 경기도박물관이 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양제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존경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기꺼이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빌게이츠를 마음속 깊이 기억하는 것은 그가 보여준 아름다운 기부문화 때문일 것이다. 이는 자기중심의 천민자본주의와는 사뭇 다른, 멋진 자본주의이다. 

돈과 물질은 유한하지만 아름다운 기증·기부 행위는 무한히 남아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돈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다만 삶의 도구일 뿐이다. 돈이 목표가 되어버린 불행한 사람들로 꽉 차 있는 이 세상에서 등불이 되는 이들을 만나는 기증자의 날 행사를 손꼽아 기다린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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