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경을 지키는 군사용으로 크게 활용하며 거기에 고압전류까지 흐르게 하는 등 무기역할까지 하고 있다. 최근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해 헝가리로 몰려들자 헝가리 정부가 국경선을 철조망으로 신속히 봉쇄한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철조망의 가장 상징적인 형태는 한반도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 살벌하게 설치된 철조망은 우리 민족의 아픈 현대사를 말해 준다. DMZ를 가로지르는 이 철조망에서 남북 모든 것이 막혀 있고 지난여름 있었던 목함지뢰 폭발사고 등 전쟁의 문턱까지 치닫는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휴전선 DMZ도 모자라 탈북자를 방지하기 위해 두만강 국경지대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철조망 밑에는 구덩이까지 파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중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과 나진선봉특구에 까지도 철조망을 설치했다는 것.
그러면 그 엄청난 양의 철조망이 어떻게 조달됐을까? 주성하씨가 쓴 ‘서울에서 쓰는 북한 이야기’에 의하면 북한은 그것을 독일에서 수입해왔다는 것이다.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갈라져 있었고 철조망이 양쪽을 갈라놓고 있었다.
그러나 한 민족, 한 언어를 쓰는 그들은 마침내 통일이 되었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으며 철조망은 철거되고 말았다. 그것을 북한이 가져다 여기저기 사용했으니 한 나라는 통일이 되어 철거를 하고, 다른 한 나라는 분단을 위해 그것을 가져다 사용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지난해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시스코 교황은 종교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었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들, 해직 근로자 등 소외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떠났다. 그래서 ‘8월의 크리스마스’가 되었다고 언론은 교황의 방한을 평가했었다. 각별한 한국 사랑을 표현한 교황에게 한국 천주교는 철조망을 잘라 만든 가시관을 기념으로 선물했다.
그 철조망은 우리의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휴전선에 설치된 것. 프란시스코 교황은 이 의미 깊은 ‘철조망 가시관’을 소중하게 로마로 가지고 가서 바티칸에 전시했다.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를 상징하는 휴전선 철조망의 가시관은 이제 바티칸에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기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원래 기독교에서의 가시관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될 때 로마 병사들이 만들어 씌운, 말하자면 조롱과 고통의 상징이다. 그때 만들어진 가시나무는 가시가 길고 뾰족한 산딸나무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에 찔리면 붉은 피가 흐르고 고통이 뼛속까지 저며 온다. 유명한 루벤스의 그림 ‘가시관 쓴 예수’에서 그 모양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의미의 휴전선 철조망으로 엮은 가시관을 들고 한국을 떠나기 전 교황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은 그것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왜 희망을 갖는지에 대해서 남북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이기 때문임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10일 노동당 70주년을 맞아 북한은 엄청난 돈을 퍼부어가며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어떻게 21세기에 그런 광기(狂氣)가 연출될 수 있을까?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쓰는 북한 동포가 더없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그 광기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휴전선 철조망의 가시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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