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아 사회 각계에서는 일본식 표현에 대한 정화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법원도 그동안 꾸준히 일본식 법률용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작업을 시행해 왔고, 올해 초에는 특허소송 분야에서 일본식 표현과 용어를 정화하는 내용의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그런데 대한한의사협회가 의료계에 남아있는 일제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양(洋)의사’라는 용어의 사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의 의료관련법령상 ‘의사’는 양의사만을 지칭하는 개념인데, 이것은 과거 일제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이므로 용어를 새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우리에게 ‘의사’는 곧 양의사를 지칭하는 단어가 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들어 선교사 등을 통해 처음으로 서양의학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서양의학이 점차 세를 얻게 되면서, 대한제국은 기존 의학의 명칭을 ‘한약(韓藥)’, ‘한의(韓醫)’ 등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현재 ‘한(韓)의사’라는 용어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런 명칭변경을 통해 대한제국은 ‘한의사’와 ‘양의사’를 모두 제도권으로 품고자 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서양의학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존 의학을 ‘한(漢)의학’이라고 호칭하고 ‘중국의 것’이라며 홀대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우리나라를 강탈한 일제는 한의사를 의사의 아래인 의생으로 격하시켰고, 나중에는 의생제도마저 폐지하면서 한의사를 제도권 밖으로 축출했다. 이때부터 의료제도 내의 ‘의사’는 양의사만을 의미하게 되었고, ‘한(韓)의사’도 ‘한(漢)의사’가 되고 말았다.
광복 이후 한의학계는 전통의학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韓)의사’로의 명칭 개정이다. 1960년대 중반에 한의학계로부터 첫 제안이 나와, 1986년에 이르러서야 ‘한(韓)의사’로의 변경이 확정되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한의학계가 ‘양의사’라는 용어의 사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의사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대한한의사협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의사협회는 현행 법률상 ‘양의사’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한의사협회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한의사협회의 주장대로라면 대중음악 및 클래식 음악가들을 ‘양음악가’로, 야구선수들을 ‘미국 야구선수’로 불러야 하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하지만 한의사협회의 주장을 마냥 흘려들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명칭을 사용할 것인가는 법률용어를 개정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고, 의복은 양복과 한복, 음악은 국악과 서양음악, 미술은 한국화와 서양화, 음식은 양식ㆍ한식ㆍ일식ㆍ중식으로 구분되어 불리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한의사협회의 주장에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명칭변경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에는 ‘양의사’와 ‘한의사’ 및 ‘의사’라는 용어가 모두 등재되어 있고, 중국에서는 의사를 서의(西醫)ㆍ중의(中醫)ㆍ중서결합의(中西結合醫)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의사’를 세분화 하여, 양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로 구분하여 부르자는 한의사협회의 주장에는 언어학적 근거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앞에서 살폈듯이, 우리에게 ‘의사’가 ‘양의사’의 대명사가 된 것은 한국 의학의 역사로 볼 때 순전히 일제 때문이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한의사협회의 명칭 변경 주장에 역사적 타당성도 있는 것이다. 정확한 용어의 정립을 통해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양한방 협진 등 옛 의료제도의 가치를 되살리면서 미래지향적인 상생과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옳을 것이다.
노생만 변호사•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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