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한 여성 그룹 가수들이 팀 내에서 분열이 생기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의지’라는 글을 올렸고 한동안 ‘의지’라는 말은 유행어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2015년 5월20일 우리나라의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확진되고 난 후 4개월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전에 겪어보진 못한 신종 감염병이 우리나라를 강타하면서 총 186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36명의 환자분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메르스에 걸려 직접 피해를 본 환자분들과 가족, 접촉자로 분류되어 격리되었던 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메르스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역학조사관, 보건소의 감염병 담당자, 검사요원, 소방서 구급대, 콜센터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메르스 발병 기간 동안 밤낮없이 현장을 지켜야 했다.
사명감 하나로 환자 진료에 임했던 의료진의 어려움도 상당했다. 의료진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 속에서 진료에 임했는지는 전체 환자 중 20% 이상이 의료인력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가져온 피해는 이러한 직접적인 피해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비가 위축되고 관광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는 메르스로 인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손실이 10조원 내외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메르스와 같은 사태를 다시 겪지 않겠다고 정부는 얼마 전 감염병 관리 핵심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메르스 사태가 의료기관 내 감염 질환의 전파였다는 점에서 의료기관 내 감염병 관리 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의료기관 내 감염병 관리에는 많은 재원이 필요함에도 현재 정부의 계획이 이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규제만으로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 수준을 향상시키려 하는 것은 의료기관 내 안전의 문제를 ‘의지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과 같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지의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특히 안전의 문제가 그러하다.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는 몇몇 사람들의 초인적인 의지나 헌신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러하지 못하다. 매번 위기의 상황이 올 때 그러한 ‘의지’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한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조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희생’이 아닌 ‘대응’을 할 수 있는 체계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의 문제에 있어 의료기관이 가져야 할 의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사실 각 의료기관이 이러한 의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 그동안 감염내과 의사들은 자신이 속한 의료기관 내에서 수많은 설득과 싸움의 과정을 겪어왔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겪어왔던 대부분의 감염내과 의사들도 의료기관 내 감염관리의 문제가 의료기관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규제와 재원의 투입은 병행되어야 한다. 충분한 관리와 대비를 할 수 있는 재원의 투입 없이 규제만 만들어지게 된다면 이는 실제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문서상의 규제로만 남게 될 가능성이 많다. 진정으로 정부가 의료기관 내 감염질환을 관리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재원의 투입이 규제와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원석 고려대 의과대학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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