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인간사에서 싫든 좋든 맺게 되는 경쟁과 대립의 관계들은 우리네 삶을 황폐화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와중에 예술이 인본 유지의 자양분이 됨으로써 사회의 건강성이 지탱되는 것이다. 세계대전이든 국지전이든 전쟁 이후 나타났던 수많은 예술사조의 흐름과 역할이 상흔치유에서 이뤘던 결과의 역사가 이를 설명해준다.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문학, 건축, 영화 등 예술은 대부분 인류의 삶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생되고 진화한 것들이다. 다만 영화는 태동기가 정확하게 짚어지는 유일한 예술이다. 하여 제7예술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1895년, 20세기를 눈앞에 둔 격동의 시기에 홀연 등장한 영화는 인류의 지형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최초로 공개된 영화중 <기차의 도착> 은 시사점이 큰 영화다. 건물 안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차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공포에 떨었던 사람들이 최초의 영화관객이 되었다. 영화의 대중 파급력은 발명기 영화에서부터 위력을 보였던 것이다. 기차의>
영화에 관한 예술논쟁이 있다. 어떤 이는 예술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상품이라고 주장하는, 영화의 산업적 성격 때문에 생긴 논쟁이다. 담론의 결과가 어찌됐든 요즘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라는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경계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보편화된 구분이다.
한편 모든 영화인들은 예술가를 자처한다. 상업영화에 기운 활동을 한다 해서 스스로 예술인 아닌 상업인이라고 고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광의의 영화가 예술이라는 불변의 믿음에 토대한 것이다.
예술영화를 ‘재미없는 영화’로 치부하는 이들이 있다. 통속성에 경도된 이들의 왜곡된 평가라 하겠다. 예술영화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생명력으로 하는데, 진지한 성찰은 때로 불편한 진실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외면하고 싶은 의지가 작동되어 그런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리라.
‘재미’는 통속성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진실성에 대한 탐구가 세계인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던 사례들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제1차 세계대전은 아방가르드를 남겼고, 제2차 세계대전은 레오리얼리즘, 누벨바그 영화운동을 남겼다. 이러한 사조의 영화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기조로 하면서 인본주의에 대한 환기는 물론, 예술로서의 영화의 지평을 넓혔던 것이다.
예술영화들은 시장 유통에 앞서 국제영화제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공인된 영화제에서 얻어낸 평가와 관심을 관객들의 관심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유통의 동력을 얻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우리 영화, 특히 예술영화의 행로는 걱정스러운 바가 있다. 몇 년 동안 칸, 베를린, 베니스 등에서 열리는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드는 걱정이다. 국제영화제 수상이 전가의 보도는 아닐지라도 그 나라 영화의 위상과 전망을 읽는 척도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예술영화의 부흥을 위해 두 영역의 분발이 요구된다. 한국영화계의 큰 손인 4대 메이저 배급사들의 행보와 관객들의 선택이 그것이다. 자본과 관객이 영화를 가능하게 하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자본과 관객이 있는 곳에서 행복하기에 인력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한국 영화가 예술로서의 부흥기를 구가하는 품격 높은 영화의 시대에 살고 싶다.
김영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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