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日本의 문화재 도둑은 무죄인가

몇 해 전 일본 출장길에 도쿄 오쿠라 호텔에 들러 호텔 정원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이름난 호텔인데다 특히 정원이 매우 유명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원 산책길 한쪽에 유달리 나의 시선을 끄는 석탑(石塔)이 있었다. 어쩐지 꼭 우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안내인에게 물었더니 과연 그것은 고려시대 세워진 평양 율리사지(趾) 5층 석탑이라는 대답을 듣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일본인 호텔 정원의 장식품으로 버려져 있다니… 하는 생각에서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 후에 언론을 통해 오쿠라 호텔의 5층 석탑을 북한에서 돌려달라는 ‘조정재판’을 신청했고 지난 7월 22일 첫 심리가 열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재판에 대해서는 모처럼 남북이 하나로 여론이 일어나고 있음도.

그런데 더욱 우리를 분노케 하는 것은 이렇게 석탑의 반환 문제가 제기되자 호텔 측은 지난 2월 이미 전격적으로 석탑을 해체하여 지금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훔쳐간 오쿠라는 일본 강점기 때 우리 문화재 도굴 왕으로 악명을 떨친 인물.

지난 2012년 일본 쓰시마(대마도)의 가이진 신사에 있던 동조여래입상과 간논지(觀音寺)에 있던 고려 불상인 ‘관세음보살좌상’ 한 점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몰래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즉시 이들 문화재의 반환을 강력히 요구했고 일본의 언론도 거들었다. 우리 사법당국은 3년에 걸쳐 이 사건을 다룬 끝에 ‘동조여래입상’은 돌려주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마침내 지난달 17일 일본에 반환했다.

이날 불상을 보관하고 있던 대전 소재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철저한 비공개로 일본대사관 관계자에게 인도했고 일본은 이것을 즉시 항공편으로 귀국시켜 007식 작전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훔쳐온 다른 한 점, ‘관세음보살좌상’은 반환하지 않고 있다.

앞에 것은 일본 쓰시마로 건너간 경로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관계법과 국제관례로 돌려주지만 후자의 경우, 충남 서산에 있는 부석사(浮石寺)의 소유가 확인됐고 특히 부석사 일대가 왜구의 침입이 여섯 번이나 있었던 역사 기록이 있는 만큼 이때 약탈해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처럼 일본이 닥치는 대로 마구잡이식 약탈을 해간 우리 문화재는 공식적으로 6만7천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개인들이 가져간 것까지 합치면 30만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2013년 2월, 세종대왕의 익선관(翼善冠)을 일본에서 입수했다 하여 매스컴이 흥분한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일본에 떠도는 약탈 문화재의 하나다. 익선관은 임금이 집무할 때 쓰는 관으로 정밀감정 결과 1660년대 것으로 확인돼 ‘세종대왕’과는 관계가 없음이 밝혀지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 역시 궁중에서 사용하던 것이 분명하고,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약탈해간 것 중에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는데 이렇듯 일본의 문화재 도둑은 무죄인지 슬픈 일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무슨 문제만 생기면 감정적으로 접근한다고 비판하는 주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나라의 주권을 도둑질 당하고 강제징용에, 위안부로 끌려갔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애국열사가 피를 흘린 나라, 그 민족의 혼이 깃든 귀중한 문화재들마저 약탈당한 나라-그 나라의 입장에 서면 우리의 아픈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광복 70년을 맞으며, 또 하나 빠뜨려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의 문화재 반환운동임을 강조하고 싶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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