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느의 5월은 뜨겁다. 남프랑스의 해변마을에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 7만의 작은 휴양도시에 수천 편의 영화와 수만의 영화 관계자와 수십만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국제영화제가 매년 5월에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 68회인 깐느영화제다.
5월의 깐느에서는 영화에 관한 수많은 단상 앞에 서게 된다. 단상의 소재는 곳곳에 있다.
영화제의 본부인 팔레 극장으로 가는 오밀조밀한 골목의 화상디스플레이어 화면에서는 세계적인 명배우들의 미소가 길손을 맞는다. 지중해변을 따라 밀집한 호텔의 차양과 명품점들의 쇼윈도 안에도 모델이 된 스타들의 사진과 영화 포스터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올해 팔레의 본관 외벽에는 잉그릿 버그만의 아름다운 말년의 얼굴이 커다랗게 자리했다. 생전은 물론 현재도 영화팬들을 설레게 하는 마력의 눈빛 그대로다. 그 아래 엄청난 인파 속에는 손 쪽지를 든 씨네필들이 여기저기 서 있다. 미처 구하지 못한 초청작의 티켓을 얻기 위해 인식표를 단 출입 게스트들의 표정을 열심히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레드카펫이 시작되는 보도에는 이름표를 단 수 백 개의 포터블 사다리가 쌓여 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진기자들의 것이다. 레드카펫이 시작되면 기자들은 사다리를 들고 단거리 주자들처럼 뜀박질을 한다.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난리북새통을 벌이는 것이다.
그들이 터뜨리는 스트로보 라이트가 그렇잖아도 번쩍거리는 거리를 불꽃축제의 섬광처럼 환하게 밝힌다. 한순간도 영화 아닌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없는 깐느의 5월이다.
국제영화제는 시민들에게 영화를 소개하고, 예술로서의 영화, 산업으로서의 영화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다양한 회합을 갖는다. 새로운 영화인들을 발굴, 지원하며 새 기획의 개발비를 조달하여 영화제작의 동력을 만든다. 그리고 제작 중이거나 완성된 영화를 팔고 산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인들 사이의 관계가 두터워지는 일도 중요하다. 어떻든 영화제는 영화를 중심으로 한 축제이다.
그러나 파급효과를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깐느영화제는 매년 300여 억 원의 예산으로 열리지만 이 영화제의 경제유발액은 조 단위를 넘는다.
영화마켓을 통한 거래뿐만 아니라 항공, 숙박, 관광, 유통 등 부가생산이 엄청나다. 영화를 매개로 한 세계이해의 효과나 프랑스가 얻게 되는 유무형의 이득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는 수준이다. 베니스영화제에 자극받아 시작한 깐느지만 이 영화제의 리더였던 질 자콥(Gilles Jacob)이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넘어 국제영화제의 상징인물로 인정되는 이유이다.
영화의 파급력에 대한 진단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20세기 초에 러시아 전체주의자들은 영화의 대중 교화력을 인정하여 국가기관으로 영화연구소를 운영했고, 그 결과로 몽타주 이론을 발전시켜 현대 영화의 기틀을 마련한 바 있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 역시 베니스영화제를 지원하고 활용했던 역사를 남겼다.
최근 부산영화제의 상황이 어렵다. 영화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가타부타 하는 일이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것은 이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는 점이다.
부산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세계화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국격의 신장에도 기여를 했다. 갈등의 확대생산보다는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시급해 보인다. 정상화의 필요성이 분명한 이상 이를 대원칙으로 삼아 관계자 모두가 편향된 이해득실의 셈법을 버리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빈 인하대 교수•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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