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꾼 배나무 갈아 엎어… 앞날 막막”

‘과수세균병’ 발병 안성 송교마을
매몰작업으로 대형 벌목장 방불 농민들 “5년간 심을 수도 없어”

“30년 동안 자식처럼 키운 나무인데 하루아침에 잃으니 눈물밖에 안 납니다”

9일 오전 10시30분께 안성시 서운면 현매리 송교마을. 350여가구가 주로 배농사를 짓는 이 마을에 때아닌 굴착기 굉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주황색의 대형 굴삭기 6대가 배과수원에 들어선 채 배나무를 연신 뽑아내면서 마치 대형 벌목장을 방불케 했다.

굴착기가 뽑고 있는 것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과수세균병(화상병)’에 감염된 배나무로 나무마다 알사탕 만한 크기의 배 열매가 맺혀 있었다. 일부는 줄기 끝이 검게 타들어 갔고 한켠에서는 뽑아 낸 배나무를 구덩이를 파 묻고 있었다.

이미 작업이 끝난 한 과수원은 석회가루가 배나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농민들은 마른 입술을 깨물며 쓴웃음을 짓는다.

농장주 최종순씨(58)는 “28년 동안 과수원(규모 1만9천834㎡)에서 배농사만 해왔다”며 “생때 같은 배나무가 땅에 묻히는 걸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아프다”고 한숨만 쉬었다. 이어 최씨는 실성한 사람처럼 연신 “배나무 수명 50년 중 가장 절정기가 올해였는데···”라는 혼잣말만 되풀이 했다.

 

▲ 국내 첫 발병된 과수 화상병으로 배나무에 대한 매몰작업이 실시된 9일 안성시 서운면 현매리 과수 화상병 발생 농가에서 중장비를 동원해 매몰작업을 하고 있다. 추상철기자

이날 최씨 농장에서 100여m 떨어진 정기훈씨(54) 농장에서도 320여그루의 배나무가 매장됐다. 정씨는 “17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과수원을 일궈왔는데 모두 땅에 묻혔다”며 “앞으로 5년 동안 배를 심을 수 없다는 말에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성과 천안지역에서 배나무 화상병이 처음 창궐하면서 매몰작업이 진행, 배 농가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7일 안성의 배 과수원(1만7천㎡, 6그루)에 화상병이 발견된데 이어 이 병이 곤충이나 비바람 등 다양한 경로로 전염, 천안 지역까지 확산됐다. 화상병은 9일 기준 안성과 천안지역에서 총 26만7천㎡ 37곳 농가에 발생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발병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발생지 주변 반경 5㎞를 관리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방역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정민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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