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가 지난주 내한하여 아홉 개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나흘 동안 연주했다.
대규모 악기 편성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베토벤 교향곡에 익숙해져 있던 청중들 사이에서는, 60명 미만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체임버 오케스트라 규모 편성과(마지막 합창 교향곡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독특한 악기 배치가 화젯거리로 회자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관현악 편성이 확대되어 가는 역사이며, 오페라 하우스의 오케스트라 피트와 한정된 궁정 거실의 공간을 벗어나 대규모 연주회장의 넓은 무대로 옮겨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곧 연주대상인 청중의 다변화와 확대의 역사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자신의 교향곡에 트럼본을 포함시킨 것은 늘어난 청중과 확대된 연주회장의 규모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1626년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궁정악단이 24명의 현악 연주자들로 구성된 스트링 오케스트라의 형태를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18세기 들어 하이든이 영국에서 지휘했던 오케스트라 규모는 현악, 목관, 금관악기와 팀파니를 포함하여 약 40명 정도였다.
1790년 이후 베토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럼본이 둘씩 있고 팀파니와 40명이 넘는 현악기군이 함께 하는 2관 편성이 보편적인 형태였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셔가 1800년부터 시작된 베토벤의 교향곡-소나타, 변주와 론도, 스케르초 등으로 혼합된 4악장 패턴을 가진 혁신적 교향곡 작품들을 연주하기에 가장 적합했던 그 당시의 악기 편성을 통해서, 오늘날 콘서트홀에서 흔히 접하는 대규모 편성의 과장된 관현악 연주와는 대별되는 전통적 접근, 즉 작품의 원형적 구조를 되살리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기존의 관례에서 벗어나 독특하게 악기를 배치한 데에서 지휘자의 독창적인 음악 및 사운드 만들기 작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은 고음대와 저음대 현악기를 지휘대를 중심으로 좌우 골고루 분산시켜 배치함으로써 전체 사운드의 공간적 균형을 추구하는 독일식 악기 배치다.
하지만 1945년 이후부터는 독일 지휘자 푸르트뱅글러가 제안하고 미국 지휘자 스토코프스키가 소개한 미국식 악기 배치가 대세를 이루었다.
특히 푸르트뱅글러가 사용했던 오케스트라 현악기군 배치는 지휘자를 중심으로 고음대 악기인 바이올린 I, II를 좌측에, 저음대 악기인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오른쪽에 배치함으로써,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정확한 연주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이는 오늘날 많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이 채택하여 사용하는 배치 방식이기도 하다.
이반 피셔는 베토벤 시대의 2관 편성을 중심으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과 바순 순서의 일렬 배치나, 플루트 뒤에 클라리넷이 위치하고 오보에 뒤에 바순이 위치하는 2열 배치의 일반적인 방식에서 탈피하여 연주 작품에 따라 목관악기 위치를 뒤섞어놓았다.
현악기군은 1945년 이전의 독일식으로 배치했는데, 특히 무대 위에 단을 설치하여 가운데 맨 뒤쪽에 5~6개의 콘트라베이스를 배치한 것을 보면 마치 오디오의 서브우퍼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고 있으며, 각 악기군 간의 음향적 조화나 입체적인 전체 사운드보다는 다소 평면적인 모노톤의 전체 사운드를 바탕에 깔아놓고 각 악기군들의 소리가 독립적으로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서로 음악적으로 대화하는 면을 더욱더 조화롭게 들리게 하려는 실내악적 접근의 의도가 분명하게 깔려있다.
콘서트홀에서 경험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 감상의 즐거움은 이렇듯 자연 재료로 건축한 콘서트홀의 자연 음향을 통해, 자연 재료로 만든 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자연의 소리와 위대한 음악에 있다.
임형균 톤마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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