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직에서 사무실과 자리

직장동료와 회식을 가면 서로 마주 보며 머뭇거린다. 자리를 잡는데 1분 이상이 걸린다. 내 자리가 어디쯤이면 적정할까 빠른 속도로 CD를 돌려 선곡을 하듯이 자리를 스캔하고 참석자를 분석한 후 자신의 서열을 4∼5번쯤으로 정한 후 그 자리를 잡는다.

이어서 오늘의 좌장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나서 서로서로 상석을 권하며 한 자리씩 물러났다가 다시 빈자리가 생기면 우두머리의 측근 자리로 한 발짝씩 다가선다. 그리하여 과장이 자리하고 앞에는 주무계장, 좌우에 2, 3번 계장이 착석하고 그 언저리는 차석의 차지이니 말석은 문 앞이나 방구석 끝자리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단히 불합리한 좌석배치다. 더구나 삼겹살을 먹는 경우 2번 계장은 연신 고기를 굽고 가위로 잘라가며 후배들의 소주잔을 받고 다시 권하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오늘 모임의 취지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술에 취하고 만다.

그렇다고 과장과 주무계장 자리에 서무담당을 배치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급별로 배치되는 경우 대화의 내용은 4그룹 4색이다. 각기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래서 자리배치 추첨표를 만들었다. 오늘 참석자가 15명이라면 1번에서 15번까지 번호표를 만들어 테이블에 난수표를 붙이고 다시 1번부터 15번까지 서식을 그린 후 입장 하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번호에 이름을 적고 식탁에 가서 그 번호에 앉도록 한다. 과장이 말석에 앉기도 하고 서무담당이 메인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 또한 소주 5순배 이후에는 흐트러진다.

그래도 적정히 자리하니 복불복 개념으로 불만은 없다. 그리고 임의의 번호표에 비표가 있다. 번호표에 ‘사회자’라 적힌 이가 오늘 회식의 사회를 보고 ‘건배자’라 적힌 이가 첫 번 건배제의를 하는 것이다.

2014년 11월, 오산시청 국장실. 공통의 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2실, 오른쪽에 2방이 있다. 직제상으로는 자치행정→복지교육→경제문화→안전도시 순이다. 경제문화국장이 명퇴하면서 승진요인이 발생하여 자치행정이 복지교육으로, 복지교육이 경제문화로 이동하고 신규 승진자가 자치행정국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므로 3개의 방이 책상과 서류를 이동할 상황을 맞았다.

국장인사 발령이 발표된 직후에 당사자를 만나 3명 국장의 방이 서로서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신임 국장님 방을 명퇴한 경제문화국장 방으로 하면 다른 2명의 국장은 이사할 일 없이 방 앞의 문패만 바꾸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곧바로 수용해 주었다. 두 곳 주무과 직원들은 불필요한 이삿짐 옮기는 ‘사역차출’을 면제받았다.

2년 전 오산시청 시장실. 회계과장은 송구한 표정으로 시장에게 보고했다. 새로운 지침이 왔는데 시장님 방은 비서실, 부속실을 합해보니 기준을 초과합니다. 곽상욱 시장은 즉답을 내렸다. “부시장실과 바꿉시다.” 그래서 사무실 입구 명패를 바꾸고 책상을 옮겼다.

시장실이 좁아졌고 응접실도 부족하다. 그래서 가끔은 부시장실이 시장님 내방객 응접실이 된다. 이 또한 시민에게는 즐거운 일, 1타2 피다. 시청에 한번 와서 부시장도 보고 시장도 만나는 기분 좋은 일이다. 부시장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⅓을 잘라내어 ‘규제개혁팀’에 내주었다.

요즘 중앙부처, 경기도청에서 운영하는 스마트워크 사무실에 책상주인이 없다. 누구나 자리를 잡으면 PC로 연결하여 업무를 본다. 기안을 하고 결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더는 자리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든 무슨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이다.

이강석 오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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