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최선의 패자부활

‘9988(전체 기업의 99%인 중소기업이 고용의 88%를 차지)’로 불리는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자 일자리의 보고(寶庫)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중소기업을 경제의 핏줄, 고용창출의 주역이라 치켜세우지만 정작 매년 문 닫는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이 직면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중소기업이 창업해서 정상 궤도에 이르는데 최소 5년이 걸린다. 그것도 거저 되는 게 아니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종업원들 월급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것이 중소기업 사장 신세다. 납기에 쫓겨 종업원들 다독거리며 밥 먹듯 철야작업도 해야 한다. 납품하고도 행여 몇 개월 짜리 어음이라도 받으면 어디 가서 할인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혹여 받은 어음이 부도나면 어쩌나 만기까지 애태우는 것이 기업가고, 부도난 돈 메우려 천지사방 뛰어다녀야 하는 것도 기업가다. 돈 벌기 위해 오히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피 같은 돈이 쉴 새 없이 들어간다. 부족하면 은행 돈도 쓰고 사채도 쓴다. 그렇게 키운 기업이다.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도산한다. 도산하는 원인이야 수십 가지지만 결과는 언제나 한결같다. 망하면 기업가도 알거지가 되지만 동고동락한 종업원은 물론이고 십중팔구 친구나 친척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준다.

정신적, 육체적, 인간관계 등등 기업가를 둘러싼 모든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수년간 돈 들이고 피땀 흘려 갈고닦은 기술, 특허, 노하우도 기업이 망하면 한순간에 사라진다. 기업만 망하는 게 아니라 국가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실패한 기업가 중 재기하는 기업가는 전체 도산기업의 19%에 불과하다고 한다. 재기하는 데 창업보다 더 큰돈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한 번 실패하면 아예 낙오자로 찍힌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지녔어도 신용불량자로 각인되는 순간 모든 금융과 투자가 막힌다. 잃어버린 신용을 되찾으려는 사람에게 온전한 신용부터 요구한다. 그야말로 실패한 기업가가 재기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만큼 어렵다. 재기기업을 지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기업의 가능성을 믿는다. 정상 기업의 성공가능성을, 재기 기업의 부활가능성을 믿는다. 신용보증을 하는 이유다. 그 가능성을 보고 은행도 꺼리는 중소기업을 과감히 지원한다. 특히 올해를 중소기업 재기지원의 원년으로 삼아 총 600억 원을 한도로 경기지역에 우선 상반기 중 26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아예 지원하는 전담조직도 별도로 갖추었다. 앞으로 지원성과를 보고 지원규모를 늘릴 것이다. 지원도 재무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다.

고용창출기업, 남다른 혁신으로 시장이 따라오지 못한 기업, 우수 기술기업 등 국가 경제적으로 재기가 필요하거나 성실한 실패기업의 패자부활을 지원한다. 돈만 지원하는 게 아니다. 경영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해서 개선방안을 고민하는 경영 컨설팅도 함께 지원한다. 실패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원 후에도 정상 궤도에 진입할 때까지 필요한 사후관리도 지속한다.

창업해서 성공하는 건 실패라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유명한 실리콘 밸리도 실패가 만든 대표적 성공작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가가 평균 2.8회 창업한다고 한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이나 경력으로 생각한다. 먼 나라 남의 이야기 같지만 우리라고 안 되란 법은 없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물가하락 속에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정상 기업도 버티기 어려운 요즘 경제상황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재기의욕마저 꺾이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재기를 꿈꾸는 기업가들에게 올 한 해는 더욱 힘에 부칠 것이다. 잘 견뎌야 한다.

신용보증기금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지만, 우선은 기업가 스스로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 재기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 가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게 최선이다.

김진 신용보증기금 경기영업본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