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1일, 빈 국립오페라 극장의 ‘리골레토’ 오페라 공연이 국내의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실시간 딜레이 중계로 상영되었다. 빈 국립오페라 극장 총감독과의 불화로 음악감독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갑자기 사임해버리자, 총감독 도미니크 메이어가 현 서울시향 음악감독 정명훈에게 객원지휘를 요청하여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전통적 방식의 공연만을 고집해왔던 빈 국립오페라 극장이 전 시즌에만 45편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HD 방송을 했고, 작년 5월에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를 일반 HD보다 4배 더 높은 해상도 화질의 UHD 방송으로 전 세계 삼성 스마트TV를 통해 처음 방영했을 정도로, 이제는 최첨단 영상미디어 기술을 통해 오페라의 대중화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오페라는, 1637년 유료관객을 위한 공공 오페라극장이 베네치아에 세계 최초로 건립된 이후 공연예술로서 활짝 꽃을 피우고 그 유행과 열기가 프랑스,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유럽인들의 대표적인 오락거리로 자리 잡았다.
음악학자들은, 역사적 맥락이나 전통적 형식으로서의 오페라가 20세기 초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진단하기도 하지만, 19세기 중후반 파리, 런던, 빈, 뉴욕 등의 주요도시에 새롭게 건축된 오페라 극장들이 오페라의 찬란한 역사를 탄탄하게 이어갔고, 세계 최상층의 엘리트 인사들은 과거 루이 14세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나 뉴욕의 메트에 모여들었다.
이러한 오페라 극장들은 20세기 동안 끊임없이 번영하는 듯이 보였던 오페라의 위세를 남미와 오세아니아, 그리고 일본, 한국과 같은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하는 오페라의 메카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세계의 주요 오페라 극장들이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미래를 준비하는데 소홀했던 탓으로 오페라는 심각한 존폐의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새로운 작품과 스타급 성악가의 부재, 천정부지로 높아져가는 제작비, 신세대의 외면 등 총체적 난관이 오페라 향유층의 감소로 이어져 더 이상 극장 객석에 관객이 채워지지 않게 되자, 과거 3세기 동안 화려한 영화(榮華)만을 누려왔던 오페라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의 한계점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영화, 팝음악, 뮤지컬 등 오늘날의 대형 문화콘텐츠 산업에 밀리면서 구시대의 골동품으로 남아 박물관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오페라의 맹주들이 이제 서서히 대중들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높은 수준의 예술이란 이유로 오페라 극장에 갇혀 주로 상류층에게만 소비되어 왔던 오페라가 대중화라는 임무를 띠고 급기야 영화 상영관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2006년 부임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피터 겔브 단장은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시작으로 세계 64개국의 영화관에 처음으로 위성 생중계를 시작했다.
현대 철학자 믈라덴 돌라르의 표현과 같이, 거대한 전통적 유물로, 어마어마한 시대착오로, 잃어버린 과거의 고집스런 재생으로, 잃어버린 아우라의 반영물로, 추종을 불허하는 포스트모던적 주제로 남아 있는 오페라가,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들의 개방ㆍ혁신적인 운영과 첨단 영상미디어 기술을 통해 어떻게 생존해 나가고 부활할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임형균 톤마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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