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烏山’에는 없는 ‘O-san 비행장’

칼국수에 칼이 들어가면 절대 안 될 일이고, 붕어빵에 붕어 없고 국화빵에 국화 피어나지 않듯이 오산에는 ‘오산비행장’이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성남시 관내에 서 있는 톨게이트에 ‘서울’이라는 전광판이 반짝이고 성남에 자리한 공항은 ‘서울공항’이라 부르며 옹진군청은 인천에 있습니다.

수도권 외곽 순환도로의 역할은 경기도 내 수원-성남-구리-하남-의정부-파주-고양-김포-부천-군포-의왕-안양-수원을 연결하므로 동그란(○) 원웨이 이거나 하나의 도로, 즉 One Way라 불렀으면 합니다.

수원에 화성역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이는 과거 화성군청이 수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성군청은 수원에 20년, 오산에 30년, 현재의 화성 남양동에 16년 자리하였습니다. 화성군청이 오산에 자리하였던 그 터에는 대형 매장이 입주했습니다.

1989년 시로 승격한 오산시 청사는 2001년 8월에 준공하여 현재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면 오산비행장의 지명 유래를 오산향토문화연구소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 여의도에는 일본군의 비행장이 생겼고 오산에 두 번째, 김포에 세 번째로 비행장이 건설되었으나 오산과 김포에는 일회용 비행기만 배치시켜 놓고 나무로 위장하고, 시동차만 배치 시켰으며 경비병을 배치하여 보초를 서게 하였습니다.

1945년 일제 강점기 때에 활주로로 사용하던 오산천 둔치 중 지금의 시민회관과 공설운동장 사이에서 조국광복 제1회 전국 축구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은 김포비행장을 사용하다가 오산비행장도 사용하게 되었는데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재개수하여 미군의 비행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1952년 평택시 송탄지역에 비행장을 새로 건설하여 이전하였지만, 명칭은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오산비행장은 현재 K-11 오산에어베이스로 불리는데 평택시 송탄지역에 있습니다. 이 지역의 지명을 살펴보면 송탄면, 신장리, 서탄면, 적봉리, 원적봉, 야리, 신야리, 장등리,긴등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명들이 대부분 영어로 발음하기에 불편하였고 기존의 오산에 있던 비행장 명칭인 ‘오산 에어베이스’라는 이름이 미군과 미국인들에게 친근하고 발음하기가 좋아 그대로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10여 년 전에 오산시와 시민들이 오산비행장 명칭을 개칭해 줄 것을 미군 측에 건의하였고 그 내용이 본국에까지 동향보고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종 지도와 자료에 ‘O-San’으로 표기된 것을 바꾸는 데는 당시의 예산으로 1조원이 소요된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625당시 작전지도에 O-San이라는 영문 표기가 가장 크게 보였다고도 합니다.

오산에는 오산비행장이 없지만, 오산에는 ‘스미스 부대원’들의 영혼이 살아 있습니다. 540명 중 181명이 전사 또는 실종된 큰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이 전투상황이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16개국 UN군이 결성되는 계기가 되고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 귀중한 시간을 잡아주었습니다.

오산비행장은 없지만, 미군이 대한민국을 지켜낸 ‘한-미 혈맹’의 역사가 오산 죽미령 UN군 초전비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입니다.

이강석 오산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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