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심각한 오해를 하는 분야가 몇 군데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영역이 이 글에서 다룰 담보권 행사와 소멸시효의 중단에 관한 문제이다. 많은 분들이 소멸시효 제도에 대하여 알고 있다.
즉, 소멸시효란, 권리자가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의 권리가 소멸하는 제도이다. 또 많은 분들이 소멸시효의 중단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즉, 소멸시효의 진행 중에 권리를 행사하면 그 때 시효는 중단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정보가 담보권과 얽히면서 심각한 오해를 낳는다.
예컨대 갑이 을에게 돈 1억원을 빌려 주었는데, 별 다른 조치 없이 10년이 지나가면 소멸시효가 완성하여 갑은 더 이상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나가기 전에 무슨 ‘조치’를 취해두면 시효의 진행이 중단되므로 채권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까? 다행히 을이 5억원 상당의 토지를 가지고 있으니 이를 담보로 잡아 두면 안전할 것이다. 그리하여 갑은 을의 토지에 저당권 등기를 마친 후, 완벽하게(?) 안심한 나머지 더 이상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10년이 흘러갔다. 이 경우 갑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즉 갑이 10년 후 을에게 대여금을 돌려달라고 하면, 을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하여 대여금채권이 소멸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갑을 상대로 자신의 토지에 설정된 저당권을 말소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갑이 아니라 을이다.
요컨대 채무자가 재산을 담보로 잡아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소멸시효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즉 저당권 등기는 그 자체를 대여금 채권에 대한 권리 행사로 볼 수 없으므로, 채권자가 저당권을 실행(경매)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그대로 진행한다.
민법 제369조는 ‘저당권으로 담보한 채권이 시효의 완성 기타 사유로 인하여 소멸한 때에는 저당권도 소멸한다.’라고 규정하는데, 이 규정은 저당권 등기와 상관없이 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또 다른 담보권인 유치권도 같다. 예컨대 공사 수급인이 도급인(발주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공사대금 채권은 3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 그런데 도급인이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자, 수급인이 공사를 마친 건물을 점유하면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건물도 인도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수급인이 건물을 점유하는 권리가 바로 유치권이다.
그런데, 수급인이 단지 건물을 유치하기만 하고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3년의 시간이 흘러가면 공사대금 채권은 시효의 완성으로 그대로 소멸한다. 민법 제326조는 ‘유치권의 행사는 채권의 소멸시효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명문으로 규정하여,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환기시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효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가압류가 더욱 효율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즉 채권자가 가압류를 하게 되면, 시효가 중단됨은 물론 그 가압류가 존속하는 동안 시효중단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가압류 등기가 말소된 이후에야 비로소 처음부터 소멸시효 기간이 다시 시작한다. 이는 저당권이 설정되더라도 그 설정 ‘직후 곧바로’ 시효가 다시 진행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김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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