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중진의원들이 만나 환한 미소로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협력을 다짐하는 모습이 TV에 나온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시선은 왠지 모르게 어색하고, 스스로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극한 대립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뼈가 부러졌다며 깁스를 한 환자가, 갑자기 나았다며 반창고만 붙이고 퇴원하는 격이다. 이는 불과 얼마 전 우리 국회의 모습이지만, 아주 새로운 광경도 아니다.
YS정권당시 필자가 현직 검사로 국회에 파견근무할 때의 일이다. 411총선 직후 선거부정 시비, 의원 빼내가기 등의 이슈로 여야대립이 극심하여 15대 국회가 표류하고 있었다. 당시 4당체제의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자, 여당이 이권 등을 미끼로 야당과 무소속의원을 영입하여 과반수 의석을 채운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어찌 됐든, 국가의 현안문제를 논의하여 국리민복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 국민의 본 뜻 임에도 국회는 열지도 않고 정쟁만 일삼아 표류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 걱정되어 한 중진의원에게 그 해법을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했다. 이런 무책임한 국회의원들을 우리국민은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행태가 사라지기는 커녕 지금도 변함없다. 얼마 전 부정비리에 연루된 야당의 중진의원은 너무 잘못되었다며 국민 앞에 사죄하였다. 그리고는 책임지지 않고 잊혀지기를 기다린다. 여당의 한 중진의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온갖 의혹에 연일 사죄하더니, 그것으로 끝이다.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예측이 되지만, 우리 정치현상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치가 앞장서서 우리사회에 상존하는 비리, 비정상을 척결해 나가지 않으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정치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법과 원칙을 철저히 지켜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부정, 부패를 척결할 듯이 말로만 그럴듯하게 하고는, 막상 자기들의 비리가 터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변명, 부인을 일삼고, 특권을 악용하여 법망을 빠져나가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국가개조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권이 개조되어야 한다. 지금 선거제도 개편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여러 정치개조 현안에 대해, 여야 모두 특위를 구성하여 대책을 세운다고 하고 있다. 그것이 말로만의 일시적 봉합이나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정치권 스스로가 이번에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국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고 책임은 지지 않는 위선정치나 정치인을, 선거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걸러내야 한다.
국회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우화가 있다. 국회의사당 근처에 서식하는 모기들 이야기인데, 이들은 다른 모기에 비해 유난히 빨대가 길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모기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의 얼굴이 너무 두꺼워서 빨대가 짧으면 피를 빨기가 힘들다”라고. 이런 유치한 얘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이제 우리국민과 정치권 모두가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정치권개조에 나서야 한다.
이범관 변호사•前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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