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어느 날, 선거관리위원회에 첫 발령을 받고 낯선 업무에 적응을 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국회의원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선관위 업무전산망의 자유게시판에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이 게시되기 전날, 저녁 9시 뉴스에서는 강원도에서 벌어진 금품 운반차량에 대한 선관위 직원의 차량 추격과 차량 안에서 다발로 발견된 돈뭉치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선거인에게 살포할 금품을 운반하던 차량을 사전 적발하여 단속한 현장이었다. 뉴스 화면을 통해 이를 보면서 눈부신 단속성과를 이루어낸 해당 선관위 직원에 대해 같은 선관위 직원으로서 부러운 마음까지 들었었다.
다음날 게시판에 게시된 글에는 당시 단속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단속 활동에 대한 그 직원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장변화에 대한 일사불란한 대응과 시의적절한 조치 등과 함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직원이 단속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돈 선거’ 실태에 대해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점이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선거현실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과 안타까움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었다. 이는 원리와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제갈공명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였다.
선거업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막걸리ㆍ고무신 선거’라고 불리던 과거 우리나라의 선거역사는 낯 뜨거웠던 게 사실이었으나 최근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등 공직선거에서는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돈 선거’ 등 부정선거 행태들이 사라지고 있음에 작게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그러나 공직선거와 달리 우리의 일상에서 실시되는 소위 ‘생활주변선거’는 소수의 이해당사자들만의 행사로 치부되어 국민 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진행되었고, 선거환경 또한 학연지연혈연 등 한정된 지역 및 구성원 간의 ‘온정과 인정’에 호소하여 ‘돈 선거’ 등 부정선거의 유혹이 아직까지도 잔존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는 3월 11일 실시되는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조합장선거는 우리나라 협동조합 역사상 최초로 농ㆍ수ㆍ축협 및 산림조합 등 전국 1천300여 조합에서 조합원 280여만명이 선거인으로 참여하여, 제2의 지방선거로 불릴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치러진다.
조합은 지역주민들의 자주적 협동체로서 지역경제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조합이 수행하는 지역사회에서의 문화ㆍ복지ㆍ장학사업 등 공적 역할을 고려할 때 조합장선거는 더 이상 조합원만의 동네선거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언론 및 국민의 관심을 받는 선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지역사회의 일원이자 민주시민으로서 이번 동시조합장선거에 관심과 후원을 보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동시조합장선거에 있어서도 다수의 조합원들에게 금품이나 음식물을 제공하여 입후보예정자가 고발당하는 부끄러운 사례가 심심찮게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이 상식으로 통하여 정의로운 사회가 현실이 되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불법행위를 더 이상 눈감아서는 안된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른바 ‘갑질논란’은 과거 비상식적 구태에 기초한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냉철한 현실 직시이자 자기반성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상식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동시조합장선거에서의 ‘돈 선거’ 근절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최성환 김포시선거관리위원회 관리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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