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법상 위임의 법리와 정치

일반적으로 정치란 하나의 단위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정하며, 그 과정에서 야기되는 개별 구성원 내지 구성원 집단 간의 이해 상충을 조율 또는 재단을 통해 해결하는 일련의 행위 전체를 일컫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정치인은 하나의 단위 사회 구성원 전체의 위임을 받아 그들을 대신하여 정치행위를 실제로 하는 사람으로서, ‘가정’이라는 기초사회의 ‘가장’이라는 정치가는 더 큰 마을단위의 사회에서는 정치가가 아니고 다스림을 받는 피치자의 위치가 될 수 있고, ‘한 마을’의 정치가는 그보다 더 큰 사회의 피치자가 될 수 있는 등 단위 사회의 대소에 따라 정치가와 피치자의 위치는 변동되거나 중복되거나 뒤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가와 피치자의 관계는 개인적인 인간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철인정치 등 매우 특별한 정치가의 관점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 매일 접해지는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정치가의 덕목을 살펴보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 사회는 분야별로 여러 가지 법률(령)을 제정하여 각 사회구성원간의 인간관계 내지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법률(령)에서도 웬만하면 개인 간의 약속 내지 합의를 제일 중요한 잣대로 보고 있습니다.

수많은 법령과 법리를 차치하고 한 사회를 규율하는 가장 기본 법리인 민법상 위임에 관한 조항과 법리를 잣대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위임을 받은 정치인의 덕목과 의무를 이해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을 가장 소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따라서 위임의 법리에서 수임인을 정치인으로, 법률행위를 공약으로 치환하면 정치인의 의무 내지 덕목이 나름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치 본질 판단에 필요한 한도에서 민법 소정의 위임에 관한 규정 내지 법리, 법률행위의 목적 내지 적법성에 관한 법리 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임인(정치인)은 주된 의무로서 위임의 유상·무상에 관계없이 위임의 내용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할 의무를 부담합니다(민법 제681조). 사무의 처리에 관하여 위임인(사회구성원)의 지시가 있는 경우에는 수임인(정치인)은 이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위임의 취지에 적합하지 않거나 또는 위임인(사회구성원)에게 불이익한 경우에는 수임인(정치인)은 그 사실을 위임인(사회구성원)에게 통지하고 지시의 변경을 구해야 합니다. 다만, 사정이 급박하여 그럴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임시조치를 취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수임인(정치인)이 그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위임인(사회구성원)의 적절치 못한 지시를 알지 못하고 그대로 사무를 처리함으로써 위임인(사회구성원)에게 손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선관주의의무위반으로 인하여 채무불이행책임을 면치 못합니다. 수임인(정치인)은 위임인(사회구성원)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위임사무의 처리상황을 보고하여야 하며 또한 위임이 종료한 때에는 지체없이 그 전말을 보고하여야 합니다.(민법 제683조)

둘째, 법률행위(공약)가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 목적이 확정되어야 하고 그 내용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그 목적은 적법성과 사회적 타당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민법 제103조 이하). 선관주의 즉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라 함은 그 사람의 직업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거래상 보통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말하는 것으로서 행위자의 구체적·주관적 주의능력에 따른 주의만이 요구되는 자기재산과 동일한 주의의무와 구별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치를 한 단위사회 구성원들간의 인간관계에 기초하여 어느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해당 단위사회의 진로와 방법 등을 강구하고 결정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 사법의 기본법인 민법상 위임의 법리와 다를 바 없고, 헌법상 권력구조론 등 거창하고 심오한 고민없이도, 쉽게 위임의 본질과 의무 등을 통해 정치의 본질과 정치인의 의무 등을 이해하려는 것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기찬 새누리당 안양동안갑 당협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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