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들이 올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꼽았다. 살아갈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강대국 간 신냉전 분위기와 헤게모니 쟁탈전 가운데서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남북 간 긴장 완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 해결, 이념 대립 해소 등 사회 내부의 문제를 잘 봉합하여 국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든, 사회든 각자의 살 길을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개인 입장에서도 ‘각자도생’ 해야 할 상황들이 참으로 많다. 청년층은 일자리를 두고 세대 간 경쟁을 해야 하고, 직장 내에서는 승진을 위해 상호 경쟁해야 하고, 은퇴 후에는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또다시 경쟁해야 한다. 이러한 경쟁에서 낙오되면 삶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산다는 것 자체가 경쟁의 연속이고 생존을 위한 전쟁이다. 철학자 홉스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지만 자연 상태에 있어서는 ‘만인은 만인에 대해서 싸우는 상태’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돈이든, 권력이든 약자의 입장에 놓이게 되면 어떨 때는 비굴한 행동을 할 때도 있고, 머리를 조아려야 할 때도 있다. 원리·원칙보다는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귀화한 박노자 작가는 이러한 우리나라 상황을 비굴한 시대라 표현했다.
큰 틀에서 인간은 서로 공동체를 만들어 협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냉엄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제롬 케이건 교수는 선행의 총합은 악행의 총합보다 크다고 하면서 비록 인간이 이기심, 공격성 등의 생물학적 경향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친절, 동정, 협력, 사랑 등의 생물학적 경향을 더 크게 이어받았다고 했다. 지리학자인 크로포트킨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책을 통해 자발적인 상호 부조와 협동 관계를 진화의 요인이라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를 위한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서는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나친 경쟁은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게 만들고 갑을 관계에서 갑질과 같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우리는 끝없는 경쟁을 통해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영원히 살 수 없고 어느 시점을 살다가 없어지는 불쌍한 존재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가 우리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경쟁에서 이긴 승자나 패자나 유한한 도긴개긴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각자도생이라는 사자성어가 사회를 대변하는 용어로 등장하는 것을 보니 사회가 정글로 조급함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경쟁에 지친 서로의 영혼을 달래주는 높은 사회지능이 필요해 보인다.
임창덕
농촌사랑지도자연수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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