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슈스케6’ 곽진언이 던진 자랑이 자랑스럽다

필자는 웬만해서 TV를 안 본다. 시간이 없어 못 보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지만 볼만한 것도 없고 기대도 하지 않아 외면하게 된다. 간혹 볼라치면 다큐프로 보는 정도일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 수업하랴 여느 기업 버금가는 어렵고 많은 행정 따라가랴 거기에 더해져 작품연출이라도 들어가면 집은 순식간에 몇 달 동안 잠자러 들어가는 숙소가 되어 버린다. 불특정 다수 관객에게 감동이나 교훈을 주겠다고 작품을 만들면서 정작 필자가 받아야할 교훈과 감동은 어디서도 받고 살지 못하는 자기모순과 이율배반에 젖어있는 것이다.

그러 그렇게 살아가는 작금에 어제는 늦은 밤 집에 들어가 상황이 혼자가 되어 TV를 틀었고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다 약간 흥분한 진행자의 소리에 화면을 멈추고 들은 것이 ‘슈퍼스타K6’라는 프로였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이었고 곽진언이라는 최종결승에 올라간 젊은 친구의 ‘자랑’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리곤 이내 곽진언의 오로지 통기타 하나에 의존한 깊은 울림이 있는 저음의 노래와 노랫말에 압도되어 난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대체로 생각하는 그런 속물적인 자랑이 아니었다. 그의 가사가 말하고 있는 자랑은 그동안 모른 체 하며 살아온 자랑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대인에 있어 자랑이라는 단어는 그저 물질과 권력 힘 이런 따위들을 쟁취 했을 때 쓰는 그저 욕망의 곁에 두는 그저 그런 단어로 어느새 변질 되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4살의 곽진언은 자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아름답게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진한 감동과 교훈을 전했다.

머리 나쁜 필자가 애써 가사를 좀 기억해 보면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 줄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거에요”라고 말하고 있다.

자랑이라는 단어를 나만의 성취, 나만의 행복, 나만의 기쁨이 아닌 타인에게의 위로와 나눔을 줄 수 있는 진정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제 위치를 찾아 준 것이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이 비극의 시대에 24세의 젊은 청년에게서 흔히 나올 수 있는 감성이 아니었다.

필자는 그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어찌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경쟁만이 화두이고 승리만이 미덕이 되어버린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줬다. 그것은 자기 것만이 진리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멋진 한방이 되었다.

적어도 필자가 바라보는 우리사회는 자극보다 정화가 필요하다. 이미 선정적이고 물질적인 인간본성의 영혼을 흐리게 하는 것이 훨씬 득세하는 세상에 대중은 지독히도 중독되어 있다. 젊은이들은 희망을 버렸고 늙어가는 민중들은 절망에 빠져들고 있다. 답은 자랑의 가사처럼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을 위로 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되면 세상은 자랑할 만한 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그것이 한 청년이 어제 내게 준 아름다운 울림이었다.

장용휘 수원여대교수•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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