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은 1951년에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시 면적의 42%를 미군 공여지로 제공하였음에도 지난 63년간 제대로 된 정부의 보상 및 지원 없이 경기북부 낙후도시, 가난한 기지촌으로 살아 왔다.
기지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한때 동두천 시민들은 ‘동두천’이라는 시 이름을 바꾸어 달라고 중앙 정부에 요청 한 적도 있다.
63년간 내 부모님이 이를 겪었고, 본인이 경험하였으며 이제는 내 자식까지 같은 상황을 겪을 차례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살기 좋은 동두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최근 동두천의 변화된 모습에 필자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열악했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하여 2005년에 동두천외고를 개교하였고, 2006년 경원선 전철 개통 및 2012년 국도3호선 대체우회도로를 임시 개통함으로써 도시환경을 새롭게 개선하였다.
시 면적의 68%인 임야를 이용하여 MTB도시로 재탄생하였고, 박찬호 야구공원, 경기북부 어린이박물관 건립, 2016년까지 미2사단 평택이전 계획에 따른 각종 개발 호재 등으로 동두천이 활기를 띄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0월 24일 갑작스럽게 들려온 미2사단 210 화력포병여단 잔류라는 비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비통하고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이 떠나면 그 자리에 대기업 단지 혹은 관광 놀이시설, 대학촌, 연구단지 등 등 호기(好期)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우리시에 인구가 늘며, 경제적 회생으로 활기차고 ‘누구나 살고 싶은 동두천’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동두천시의 절반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캠프케이시에 미군 병력 일부가 잔류한다니... 동두천시가 염원하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며, 과거 중앙정부의 결정사항을 지자체에 하달했던 국가권력의 일방적이었던 모습의 재연이어서 동두천시민들은 큰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
정부 3.0으로 소통과 개방을 외치던 정부에서 우리 시민들의 성숙도와 합리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묵시하고 일방적으로 내린 처사다.
중앙정부는 미군 잔류에 대한 더 나은 소통방법과 해법제시가 있어야만 할 것이고, 이를 수용할만큼 동두천 시민들의 수준도 높아졌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이제라도 오랜 세월 기지촌이라는 오명으로 희생 한 동두천 시민들에게 또 다시 같은 상처를 주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지자체를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두천은 더 아픈 손가락일 수 있다.
낙후도시에 사는 부모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자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동두천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도록, 내 아이가 자랑스럽게 “내 고향 동두천에 산다”라고 말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길 간곡히 바란다.
전성희 동두천시 기획감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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