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분트 공동체문화 꽃피워야

어떤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근처 나무에 음식을 메달아 놓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게임이었는데, 아이들은 각자 뛰어가지 않고 모두 손을 잡고 가서 함께 먹었다.

인류학자가 “1명이 먼저 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 함께 뛰어 갔지?”라고 묻자, 아이들은 “우분트!”라고 외치며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째서 한 명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라고 말했다.

‘우분트(UBUNTU)’는 아프리카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다. 타계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이 말을 강조하면서 지구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 우분트 미담사례가 국내외에서 나타나고 있다.

운동회에서 같은 조로 달리기를 한 4명의 아이들이 연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로 매번 꼴찌만 했던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뛰어 ‘나 홀로 1등’보다 ‘다함께 1등’을 하고, 할머니와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어 운동복을 구입할 수 없는 친구를 위해 학급의 모든 학생이 운동복을 입지 않기로 한 일이며, 소아암으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다 빠진 친구를 배려하기 위해 같은 반 친구 모두가 삭발을 하는 일도 일어났다.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많은 학자들이 예견하는 미래는 세계화, 다문화, 지구촌 시대로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하여 더불어 사는 공존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 질 전망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이들에게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라면 더불어 사는 품성을 길러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 교육의 최우선 과제이다.

먼저, 역지사지(易地思之) 체험교육으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해있는 입장에 따라 시각과 관점이 다르며, 똑같은 현상에도 이념, 세대, 계층, 빈부, 노사, 종교, 사는 지역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다를 수 있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남의 입장에 서보는 체험기회가 필요하다.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해보는 농촌체험, 두 눈을 안대로 가리고 생활해보는 장애체험, 다문화 친구의 어려움을 함께 겪어보는 다문화체험 등에 참여하게 해보자.

다음은, 배려와 나눔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품성은 배려하고 나누는 삶 속에서 길러질 수 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밝기는 약해지지 않는다. 설사 배려와 나눔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수반된다 해도 그것은 행복으로 되돌아온다.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남을 배려하고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체험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소통과 공감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과 공감이다. 소통과 공감은 서로 다른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친밀감을 느끼는 적극적인 소통과 공감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분트’ 정신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양극화, 여야의 양보 없는 대치상황, 노사갈등, 이념대립, 빈부격차 등 최근 우리 사회의 현상을 보면 ‘우분트’라는 말이 가장 절실하다. 사회와 국가의 출발지인 학교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 배려와 나눔, 소통과 공감의 체험교육을 통해 더불어 사는 품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언젠가 오렌지주스 TV광고 중에 ‘따봉(TA BOM)’이라는 포르투갈어가 나온 적이 있었다. ‘아주 좋다’라는 의미로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광고였는데 한동안 유행했다. 이제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분트!”라는 유행어와 함께 우분트 공동체문화를 꽃피워 보자.

정종민 성남교육지원청 교수학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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