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명량해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최근 영화 명량을 5회나 관람하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4회는 이천ㆍ서울 직원들과 또 1회는 두 아들과 함께 보았다. 아마도 영화사에 기념비적 히트작으로 평가 받으라라 생각된다.

명량의 또 다른 의미는 명량의 장소였던 진도 앞바다는 세월호 참사의 맹골수도와 불과 30㎞ 밖에 되지 않은 근접된 곳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랑스런 명량대첩과 부끄러운 세월호 참사, 각자의 입장에서 두 사건을 비교하며 스스로 자문자답해 볼 귀중한 교재라 하겠다.

‘尙有十二’(상유십이)란 단어는 내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웠고 담요 한장을 옆에 끼고 상경, 좌우명처럼 쓰던 말이다. 나에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느껴질때마다 되뇌이던 말이다. 몇 차례의 고시낙방 때도, 이땅에 유일한 형님이 40세에 요절하셨을 때도, 막노동과 화장품 행상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스스로에게 수없이 하던 말이다.

그후 민선시장 3선과 19대 총선에도 나같은 시골촌놈에게 항상 힘이 돼 준 청량제다. 지난 지방선거와 관련, 6ㆍ4선란(選亂)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속으로 다짐한 말이다. 나는 과연 그들이 치밀하게 계획한 음모와 깊게 파놓은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가.

목숨을 건다, 죽을 각오로 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함부로 말 해서도 안된다. 이순신처럼 실천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장군은 언행일치의 사람이다.

역모로 몰려 죽음직전까지 갔던 이순신, 다시 백의종군, 삼도수군통제가 된 이순신은 개미떼 처럼 몰려오는 기세 등등한 적선들을 바라보며 아직도 우리에겐 “12척이나” 있다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보다 더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영화 명량을 다섯번씩이나 보며 겨레의 멘토 이순신에게 매료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순신을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7계급이나 특진시켜 불멸의 충무공으로 만들어 낸 재상은 서애 유성룡이다. 그분은 나의 13대 선조이기도 하다.

오늘의 불초한 후손을 보며 무어라 말할 것인가. 참으로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영화 명량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요컨데, 인간은 위기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다. 인간은 배신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어디 동물이 주인을 배신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어느면에서는 동물만도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적이 많다.

백척간두의 위기를 당하여 외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들이다. 영화 명량에서 보았듯이 자기 한몸의 보전을 위해 전쟁의 불가함을 계속 주장하더니 마침내는 배신하여 진영을 이탈하려는 참모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생간 결단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리더들의 외로움은 적군에 대한 싸움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쫒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 이게 어찌 장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랴.나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진광풍이 불어 파문이 일었다. 측근이라고 자처하던 몇몇 참모들이 공천과정에서 탈락하자마자 자기가 몸 담았던 둥지에 불을 지르고 온갖 해코지를 하며 욕성을 퍼 붇는다. 배신의 극치이다. 로마시대의 ‘부르터스’도 양부인 ‘시저’를 죽이며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배신은 동서고금의 보편적 속성이란 말인가. 아 슬픈일이다.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세월호 침몰의 가장큰 직접적 원인이 이준석 선장의 배신적인 도망이었다면 명량해전의 승리는 목숨 바쳐 백성과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이 겨레 앞에 바친 선물이다.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따라서 영화 명량은후손들의 인성교육, 특히 충성과 의리의 교재로서도 마땅이 홍보되어야 할 것이다. 장군으로서 백성과 나라에 대한 의지를 지키며 ‘상유십이’를 외치는 이순신의 음성은 나약한 우리 인간에게 언제 어디서나 큰 복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유승우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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