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단상] 잔도(棧道)는 없다, 사즉생(死卽生)이다

- 새로운 대안 야당의 노선정립을 위하여

추석이 지났다. 정치부재다. 정치실종이다. 추석민심? 단언하자면 국민이 정치를 버렸다. 민심이 떠난 지금 엄밀한 의미에서 국회의원의 자격이 없다. 무능하고 오만하기는 대통령과 국회가 한통속이다. 이 나라 정치인들은 민심난독증에 빠진지 이미 오래 됐다.

더 한심하고 기가 막힌 것은 만년 야당의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서도 안빈야당(?)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길거리에 나가 투쟁의 깃발 아래 숨어 위기를 망각하는 이 구태의연한 장외정치에 박수를 보낼 국민이 또 있을까?

위기의 진원지는 ‘대중노선에서 이탈한 정치’를 해 온 지난 10년 세도세력들이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다시 부상하는 데 있다. 야당의 비극이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이들을 대체할 세력도 뚜렷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패배주의에 젖어 ‘탈당’이니 ‘분당’이니 하는 말을 쉽게 꺼내 들고 있다. 이 또한 성급하고 비겁하다.

잘못된 노선과의 결별이 가능한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국민의 평가는 이미 내려졌다. 그런 노선으로는 결코 승리하지 못한다. 이 경로의존성의 정치에 국민은 물론 당원들이 신물이 나 있다. 국민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건강한 야당, 든든한 야당이 없이는 정치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야당의 집권을 기다리는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우리에게 잔도(棧道)는 없다. 사즉생(死卽生)이다.

야당은 상투적인 반성과 당의 쇄신을 입으로만 반복하고 있다. 정파적 이해에 따라 기득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지난 10년은 동일한 패배의 방정식을 풀지 못했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국민은 무수히 그 해법을 제시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귀를 닫았고 국민이 한숨짓고 절망했다.

이 패배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 우선 지난 선거를 뒤돌아 보고 책임 있는 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이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결론이 뻔한 해법으로 다시 적당히 수험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예선탈락의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이다.

지난날에 대한 성찰 위에서 새로운 방향설정과 대안야당의 노선정립이 필요하다. 이중적 의미에서 대안야당이다. 첫째, 국민들로부터 현 정권에 대한 대안으로 인정받아 정권을 되찾아올 수 있는 수권정당으로서의 대안야당이다. 둘째,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노선과 정체성을 반듯이 한 대안야당이다.

국민의 삶의 향상이라는 목표를 향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되 중도ㆍ합리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어나가는 정치노선이 필요하다. 중도진보주의 노선에 입각해 정치투쟁을 자제하고 민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적 갈등과 정쟁거리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고 최소화해야 한다.

안보문제는 남북 대치상황과 국민정서를 고려해 중도보수적 노선을 견지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야당은 이중지향성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모든 정치행위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을 대원칙으로 해야 한다.

다른 진보정당들에 끌려가서도 안 된다. 타 정당들과의 정책공조나 연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권연대라는 미명하에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들과의 연대나 단일화에 매달리는 것은 더 이상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이상이 우리가 지향하는 새로운 방향, 새로운 노선, 대안야당의 길이다. 국민은 우리의 진보에 희망을 걸고 중도에서 안도한다. 건강한 보수세력과 생산적 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우리의 힘으로 국민을 믿고 올바른 노선이 결국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뤄질 수 있다. 명량에 나온 대사 하나를 인용한다. “두려움을 떨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용기는 잔도(棧道)가 없는 사람들이 절망의 벼랑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두레박이다.

※잔도(棧道) :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길

김영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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