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병영문화혁신, 부대-병사-부모 삼자소통 시작하자

참혹했던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뒤 지역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용인 처인구를 방문하면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님들의 태산같은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아들이 전화로 “괜찮다”고 하는 말이 사실인지도 모르겠고, 휴가 나왔을 때 종아리에 작은 멍이라도 보이면 가슴이 덜컹하는 게 부모님들이다. 우리는 군에 입대한 청년들 덕분에 두 다리 뻗고 자는데 부모님들은 왜 이렇게 불안에 떨어야만 하는 걸까?

8월 초 지역에서 만난 한 어머님이 아들이 근무 중인 부대 지휘관에게 전화 한 통만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구해달라는 민원을 보내왔다. 어렵지 않은 일이라 해당 부대에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중대장은 자신의 전화번호가 개인정보라 알려줄 의무가 없다며 육군 대장 출신 국회 국방위원인 필자에게도 제공하지 않았다.

지휘관이던 시절 누가 요청하지 않아도 필자를 포함한 예하 지휘관의 전화번호를 부대원 부모님들께 알려드렸다. 필자 역시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번호를 알려준다고 해서 지휘관들이 민원전화에 시달린 적도 없다.

다들 현명한 분들이라 긴급상황이 아니면 연락을 자제한다. 소통창구가 열려있으면 부모님들은 언제든 아들과 연결할 수 있는 소통창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고, 아들의 군생활에 점점 무심해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상병쯤 되면 휴가 나오는 게 귀찮을 정도가 돼버린다.

그러나 이젠 이것도 옛이야기다. 대부분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요즘 부모님들에게는 지휘관 전화번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적극적으로 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지휘관을 할 때와 달라진 건 크게 없다.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화,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지, 큰맘 먹고 가야하는 면회는 요즘 부모님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8월 19일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지휘관 시절 경험과 최근 겪은 중대장의 전화번호 전달거부 등을 국방차관에게 밝히며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시했다. 국방부가 발표한 병영문화혁신 과제에도 부모님의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보이지 않아, 소통문제 해결책을 과제에 반드시 포함할 것을 강하게 역설했다.

다행히 25일 병영문화혁신위는 40개 혁신과제 가운데 우선조치과제 4개에 부대-부모-병사 간 소통을 보장하는 방안을 포함해 국방부에 제안했다. 중대급 단위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 사이트와 인터넷 카페를 활성화하고 수신전용 전화기를 생활실별로 배치하는 것이 골자다.

만약 필자의 제안을 국방부가 귀담아 들었다면 일부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은 제외하고 병영문화혁신위의 제안을 수용할 것이라 본다.

물론 이러한 소통문제 개선책은 혁신의 도화선이자 시발점에 불과하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더 많은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먼저 병사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면서 인명을 중시하는 장병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간부들은 병사를 보조적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어엿한 전투원으로 대우해야한다.

또한 의식주를 모두 부대 안에서 해결해야하는 병사들을 위해 사회에 버금가는 시설을 제공해줘야 한다. 최신식 헬스클럽은 아니더라도 갖출 건 다 갖춘 운동시설, 번화가 편의점급 상품을 구비한 PX, 편안한 잠자리 등 인간의 기본욕구가 충족되는 하드웨어가 구비돼야 선진병영문화라는 소프트웨어도 무난히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국방부가 병영문화혁신위와 함께 실효성 있는 방안을 더 많이 발굴해 우리 부모님들이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실 수 있는 병영을 만들어줬으면 한다. 지금도 아들의 무사전역을 기원하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이 가슴에 전해진다.

백군기 국회의원ㆍ새정치민주연합 용인(갑)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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