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

“새 울음과 벌레 소리는 모두 마음을 전하는 비결이요, 꽃봉오리와 풀빛은 진리를 표현하는 명문 아님이 없도다. 배움은 타고난 슬기를 맑고 밝게 하고 가슴 속을 영롱히 하여 사물을 대함에 모두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명나라 말 홍자성이 엮은《채근담(菜根譚)》의 한 구절이다.

쉽고 간결하며 소박하며 담담한 글들이나 삶의 지침서로 평소에 좋아해 곁에 두고 이따금씩 펼쳐보곤 한다. 우리 인간이 주변에서 접하는 미미한 풀벌레와 풀꽃과 어떤 관계인지를 명확히 알려준다고나 할까.

말복과 입추가 동반 퇴장하고 난 사흘 뒤 맞이한 음력 7월 15일 뜬 달은 올 들어 가장 큰 보름달이란다. 그날 오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으나 다행히 밤 11시경 그치자 얼굴을 드러낸 맑고 밝은 달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절기가 이리도 분명하단 말인가. 대낮엔 폭염이나 아침과 저녁 삽상한 바람이 불며 특히 새벽녘은 확실히 달라졌다. 북송의 시인이며 대문장가인 소식(蘇軾·1036~1101)의 명문인 덧없는 인생살이에서 벗어나 대자연과 합일을 읊은 임술지추 칠월기망으로 시작하는 ‘전적벽부(前赤壁賦)’가 입가를 맴돈다.

봄이 줄어들고 여름이 길어져 염장군의 긴 횡포에 시달렸으나 변함없는 대자연의 운행은 어김없이 가을을 향하고 있다. 올 추석은 빨라 제수(祭需)를 걱정하기도 했으나 높아진 기온에 서둘러 영근 과일들이 있기에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도 한다.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산사나무에 시선을 옮기니 열매인 아가위가 윤택 있는 붉은 색을 띄기 시작했다. 마로니에란 이름이 더 익숙한 칠엽수 열매는 이미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밤송이도 제법 굵어졌으니 가을이 다가옴을 절감하게 된다.

박물관은 넓은 의미로 동물원과 식물원 나아가 수족관까지를 포함한다. 박물관은 아름다운 정원을 지니고 있거나, 뮤지엄 파크란 용어처럼 공원 속에 위치하기도 한다. 숨고르기를 하듯 일상에서 잠간 멈춰 여유를 가지고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박물관이다. 실내는 유물 보존상 일정온도를 유지해야 되기에 전시실은 사뭇 시원하다.

올처럼 무더운 여름철 도심의 피서지로 이만한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무실 방충망에 말매미가 달라붙어 세차게 울더니 한 이틀 자리를 뜨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뭇가지에 붙은 매미 허물은 꽤나 신비롭게 보였다. 알에서 애벌레를 거쳐 성충이 되기까지 몇 차례 탈바꿈은 신비롭기도 하며 꽤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박물관에서 역사와 고고학과 함께 한 축을 이루는 미술사(美術史)는 흔히 ‘인문학의 꽃’으로 지칭된다. 학문의 목표는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이나 미술사는 우리 인류가 창출한 걸작과 명작 등 아름다움과의 만남을 통해 미의 본질과 탐색이다.

대상이 조형미술로 일견 사치스럽기나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엄연한 학문이기에 갖춰야 할 구비조건이 결코 녹녹하지 않다. 미학적 비평과 미술사 모두는 실기가 아닌 이론이 위주이나 이 분야 학자들은 창작인의 소양과 감수성 그리고 안목, 예술 전반과 인접분야에 대한 관심과 이해, 제작기법에 대한 파악 등이 요구된다. 아름다움은 찌든 일상의 삶에 생기를 부여한다. 해서 힐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회화사 소재 중 동식물에 초점을 두면서 각종 새며 꽃들과 나비를 비롯한 각종 곤충들을 그림과 더불어 이들을 유심히 살핌은 생물학자의 관심에 버금간다 하겠다. 이들 그림이 단순히 곱고 예쁘다는 감탄사에 그침이 아니라 보면서 새와 풀벌레 울음소리와 꽃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나아가 이들을 소재로 읊은 시문 등 문학과 역사, 철학 나아가 음악까지 아우를 때 조형적 예술적인 성취와 함께 진솔하며 종합적인 감상이 가능해 진다. 박물관에서 다가오는 가을소리에 귀기우리며 자연과 예술의 아름다움과 조우하는 낭만을 생각해본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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