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낭랑? 18세, 경기도박물관

시국이 어수선한 1970년대 초. 대학 도서관문도 닫았던 그 시절, 박물관은 내게 안식처 이상이었다. 전시실은 늘 조용했고, 고요가 밴 곳에서 선조가 남긴 유물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그들이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가슴 설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역사학도에게 그곳은 학문의 도량이자, 과거와 미래를 헤아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삶의 흔적만이 아닌 혼과 얼이 깃든 아름다운 문화재를 자주 접하며 어질고 착하며 해맑은 마음과 정신을 지닌 민족임을 스스로 깨닫게 됐다. 지난해 봄, 37년 2개월간 몸담았던 국립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별도의 퇴임식을 거부했었던 터라,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달에 서울 용산의 한 식당에서 전국 국립박물관에서 온 70여명의 연구직 동료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퇴임사에 대해 사전 준비가 없던 내게 그 자리에서 마이크를 받아든 순간 눈시울이 촉촉해지고, 새삼 벅차오르는 가슴과 함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아른거렸다. 두서 없이, 그러나 평소 담고 있던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

조상이 남겨준 아름다운 많은 문화유산과의 조우, 일본과 미국 등 국외 전시의 현지 관리관으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데 대한 감사로 시작했다. 1975년에 치른 제1회 학예직 공채 동기 15명 중 가장 어린 탓에 보직에 대한 의견표명을 하지 않은 일화 등도 술술 나왔다. 보직(補職)은 연극의 배역과 같은 것이니 꽃방석인 줄 알았다가 가시방석임을 깨닫게 된 적도 있고, 초라한 주연과 빛나는 조연이 있음도 첨언했다.

곧 어머니인 고향이 있는 경기도박물관이 부르자 내게 주어진 미션이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며 조심스레 응했다. 몇 차례 국립박물관 이전과 지역박물관의 재개관 등이 뇌리를 스치자 분명한 목표가 보였다.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는 구석기는 물론 신석기시대부터 똬리를 틀어 민족을 형성해 고대국가 백제가 탄생한 곳이다.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도 한강을 껴안아 비로소 가능해졌다. 고려와 조선왕조 각 왕조를 500년간 지탱한 저변에는 경기의 역할이 실로 지대했고, 오늘만이 아닌 미래의 역할도 크게 기대된다. 4년 뒤인 2018년은 경기 1천 년이 되며, 금년은 정도 600년이다. 정말 도약을 위한 좋은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는 21일은 ‘경기문화의 메카’인 경기도박물관이 18세가 되는 날이다. 그동안 경기도의 문화유산을 조사·발굴해 학술조사보고서를 발간하고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등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박물관에 대한 높은 기대치와는 달리 우리가 처한 현실은 부끄럽기 그지없고, 열악하며, 참담하다. 하지만 이 현실을 더 이상은 감출 수만은 없다. 박물관은 나름의 장기 플랜을 준비하고 있으나 예산이 부족해 모든 것이 답보 상태이다.

전반적인 리노베이션이 요구되는 낡은 건물, 많은 유물이 발굴과 연구 성과를 제대로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비좁은 공간, 쾌적한 관람을 위한 새로운 전시기법에 요구되는 전시실, 연구 인력의 축소, 단절된 외국과의 교류, 박물관의 핵심인 유물의 구입비가 전무한 점 등 ‘첫째가 꼴찌가 된 몰골’ 정도를 넘어섰다. 이쯤 되면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모독이다.

‘낭랑(朗朗) 18세’ 아름답고 풋풋하고 발랄할 시기를 맞이했건만 경기도박물관은 우울하다. 아픈 만큼 성숙하며, 겨울을 견딘 나무만이 동량(棟樑)이 됨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아가 젊음의 특권인 갈등과 고뇌나 성장통(成長痛) 정도로 비칠지 모르겠으나 박물관의 현 상태는 의외로 심각하며 중병이 아닐 수 없다.

겉은 그럴 듯해도 마음과 정신이 죽으면 모든 것은 끝이다. 역사건, 사회건, 사람이건 모두 예외가 아니니 존재가치를 상실하면 살았으되 산 것이 아니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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