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3권낸 93세 시인 남덕우 할머니
“건강 비결이랄게 뭐 있나. 자유롭게 시도 쓰고 책도 읽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으니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93세의 나이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여생을 기꺼이 즐기며 이를 시로 담아내는 이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남덕우 할머니는 고령에도 꼿꼿한 몸과 정정한 걸음걸이를 자랑한다. 더 놀라운 것은 남 할머니가 써내려가는 시. 또박또박한 필체로 원고지를 가득 채운 수십편의 시를 읽어본 주위 사람들은 ‘믿기 힘들다’고 말한다.
1922년생인 남 할머니는 남존여비가 뿌리 깊었던 시절 1남 6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여자는 공부하면 단명한다’는 아버지 탓에 정규 교육도 받지 못 하고 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농사일을 했던 게 유년시절 기억의 전부다.
남 할머니는 “나중에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 ‘공부를 했으면 크게 됐을 텐데 미안하다’며 눈을 감으셨는데 그게 그렇게 가슴아프다”며 눈물을 훔쳤다.
비롯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 했지만 남 할머니는 남달리 총명해 사촌 오빠 어깨너머로 한글과 한자를 깨우치며 글자만 보이면 외웠고 한번 본 내용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남 할머니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됐다. 6남매 맏며느리로 시어머니를 모시며 시동생들 공부시키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았다. 그 때 고단한 생활을 버티게 해준 것이 바로 시가 담긴 책이었다.
시는 할머니의 메마른 마음을 촉촉히 적셔 주었고 시를 읽으면 그리운 고향으로 날아가 부모형제도 만날 수 있고 시를 통해 새가 되며 꽃도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에 빠져든 남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자신이 직접 시를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고, 길을 걸을 때나 거울을 볼 때도, 꽃잎을 봐도 자꾸자꾸 시상이 떠올라 독자에서 시인으로 변신하게 됐다.
남 할머니는 지금까지 총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시구를 모아둔 공책도 아직 방에 한가득이다.
그는 “시를 쓸 때는 형식도, 내용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한다”며 “어린시절 추억, 세월의 무상함,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시의 재료”라고 말했다.
이어 남 할머니는 “시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며 “앞으로도 시로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은은해지는 시구처럼 더욱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남덕우 할머니의 아름다운 황혼을 기대해 본다.
안양=한상근기자 hs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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