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한국 현대미술과 전통 논의

한국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작업을 ‘전통과 현대의 결합’ 내지는 ‘전통을 현대화’하거나 ‘서구현대미술을 토착적인 정서로 해석’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대다수 작가들이 그러한 알리바이를 만들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니 작업을 한다는 것의 목표는 너무도 명확하고 선명하다. 그러나 미술에 목표라는 것이 있는가? 아니 미술의 과제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나는 작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전통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현대화한다는 말의 뜻이 뭔지, 더불어 과연 전통과 현대는 만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오랫동안 한국현대미술은 예외 없이 ‘현대와 전통’ 사이에서 현재적 정체성의 의미를 모색해왔다. 아울러 현재적 자기정체성에 대한 전통적 환원이라는 방법론에 기초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논리적 모순이다.

전통이란 것이 허깨비가 아니라 사회규범과 제도 등의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힘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음을 상기하면 현재라는 시간을 메우고 있는 그 제도들 밖에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전통은 보존되고 전승된 어떤 것이 아니라 고안된 어떤 것이다. (에릭 홉스봄) 그러니까 전통이란 이 시대의 여러 가치관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전통이란 현재가 과거에 대해 덧씌운 프레임이다.

사전에 의하면 전통이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날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 또는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이라고 정의한다. 전통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영향력의 지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행과 다르고, 완전히 소화되어 주체적 인식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유산과 구분된다.

기존에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논의하는 입장들은 마치 문화라는 것이 한국으로 국경 지워진 영토에 자연스럽게 귀속되어 있는 동물계나 식물계 같은 자연현상처럼, 한국문화는 한국에 토착적인 그 무엇이라는 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반면 이 같은 보수적, 정태적 관점에 반해 전통이 선험적으로 존재한다기보다는 특정 조건이나 목적 하에서 의식된다는 관점이 있다.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권력적인 것이며, 타자를 소외시킴으로써 스스로의 힘과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근대화의 역사적 필연성에 내재한 여러 문제점과 모순을 인식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한국적 정체성 논의, 그리고 전통논의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이 한국적인 것이냐를 가지고 풀리지 않는 고민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읽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덧붙여 전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떠한 조건에서 다수의 동의를 획득하고 그토록 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전통에 대한 인식과 그 해석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과다한 고민 대신 원본(전통)의 자유로운 참조와 이에 대한 독창적 변역을 과감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태도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전통이미지라는 텍스트들은 고유한 의미를 발현하는 오리지널리티로서의 권위를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원본의 무게가 탈각된, 언제든지 인용하고 조합할 수 있는 수많은 텍스트들 중의 하나로 기능한다.

그에 따라 이 복수적 텍스트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작가에 의해 조작 가능한 수많은 기표들로 다루어지고 서로는 자유롭게 접합되고 연쇄된다. 그러나 그저 유희적인 차원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아쉬움도 크다. 전통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에 고안된 것이기도 하다. 전통은 당대의 현실적인 여러 제도에 의해 호명되고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왜곡된 ‘가짜 전통’, ‘박제’들이다. 새삼 드는 생각은 한국현대미술에서, 당대 우리 문화에서 시급한 문제는 이 전통과 현대라는 기존의 굴절된 인식의 교정과 이의 반성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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