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졸업한 후 어느 직장에서 첫 출발을 하느냐가 장래의 진로를 대부분 결정한다. 중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하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은행권으로 진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출발하면 내부 노동시장에서 평가받고, 퇴직할 때까지 직장 충성도 등에 따라 승진 경로를 밟아 간다.
오는 2016년부터 정년 60세가 법으로 보장받게 됐지만, 상당수 조직에서는 현재의 정년을 지키지 못하고 4·50대에 직장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또 정규직으로 퇴직한 탁월한 역량의 소유자도 다른 정규직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년을 맞아 혹은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밀려난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자영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 어렵지만, 대졸자가 아니면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너도나도 대학진학을 고집하게 한다. 이 탓에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OECD 국가 중 최고다. 그러나 기업들은 대학 졸업생을 채용해도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해 재교육 훈련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불평한다.
분절되고 닫힌 노동시장의 중심에 학력중심사회, 연공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에 의해 평가받는 보상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능력중심사회 구축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e Standard: NCS)은 출신학교나 학력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에 의해 노동시장에서 인적자원을 평가하는 기저가 될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지지부진하던 NCS 개발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돼 올해 말까지 856개로 구성된 NCS체계 구축이 완료될 예정이다. NCS에 기반을 둔 학습모듈 개발도 일정대로 추진돼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또한 NCS 학습모듈은 특성화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의 직업교육을 현장 필요에 맞게 개혁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55개 NCS분야에 대한 468종의 학습모듈이 올 4월 말까지 공개됐고, 195개의 NCS분야에 대한 학습모듈이 개발된다.
우리나라 직업교육훈련기관들은 아직 NCS 활용을 주도적으로 할 수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NCS 학습모듈은 전문대나 특성화고 뿐만 아니라 직업훈련기관들의 훈련과정을 NCS기반으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NCS와 NCS 학습모듈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 주관하고 있지만 개발과정에 산업계, 현장 실무자들이 참여하고 있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직업교육훈련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NCS와 NCS 학습모듈 개발은 시작에 불과하다. NCS를 활용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업종별 단체의 역량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NCS체계가 잘 구축된 영국, 호주 등을 보면 업종ㆍ단체별로 NCS를 전담하는 수 십 명의 전담인력을 별도로 구성하여 NCS 개발과 활용을 주관하고 있다.
아직 우리는 기존의 산업별 협회에서 2~3명의 인력이 인력개발관련 업무를 하는 수준이어서 정부 및 공공기관이 주도해 이들 업종별 단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인력을 스스로 양성하려는 인식을 해야만 현장수요에 맞는 NCS가 개발되고 잘 활용될 수 있다.
특히 NCS와 연계되는 국가자격체계(National Qualification Framework: NQF)의 구축이 시급하다. NQF는 NCS를 기반으로 하여 학교교육, 직업훈련, 평생학습제도, 자격을 연계하는 제도이다. NQF가 구축되어야만 NCS에 기반을 둔 교육훈련을 통해 축적된 역량에 대한 시장에서의 평가가 가능하고 고등교육을 통해 획득한 역량과의 연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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