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피어나면서 밀과 호밀 등 수확 상황에 따라 독특한 빵문화가 형성되면서 프랑스식과 영국식 등의 독특한 제빵기술이 형성되었다.
중국에서는 찐빵이나 만두와 같이 오븐에서 굽기보다는 찌는 방식이었으며, 일본도 14세기 경 중국의 영향을 받아 에도시대에는 서민들에게 찐빵이 보급되었으며, 서양빵은 16세기 무로마치 시대에 전래되었지만 밥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이 빵을 주식으로 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청나라는 아편전쟁으로 위기가 닥치고 일본에서는 막부 말기 쇄국정책으로 잊혀졌던 빵이 휴대하기 편리한 군사식량으로 부각되면서 빵의 개발과 연구가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미토 번에서는 허리에 찰 수 있고 휴대하기 쉬우며 보존력이 좋은 건빵이 개발되었고, 사쓰마 번에서는 검정깨를 넣고 1∼2년 정도 저장이 가능한 딱딱한 빵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일본 육군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조사단을 파견해 군용 빵을 검증하였고 밀가루, 쌀가루, 계란을 배합한 고빵을 만들어 러일전쟁에서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빵들은 밥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일본인의 입맛을 고려해 다양한 잡곡을 첨가한 것들이었다.
이와 같이 군사식량으로 빵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1882년 경 도쿄의 빵집은 116곳에 이르렀다. 또한 단팥빵이라는 전혀 새로운 빵이 만들어지자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을 제패하고 천황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처음 단팥빵을 만든 야스헤에는 간식용으로 단팥빵을 개발하기 위해 집념을 불태웠는데, 그는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술찐빵에 단팥소를 안에 넣어 빵처럼 오븐에서 굽는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였다.
6년간의 흔들림 없는 연구는 1874년 단팥빵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쌀누룩을 사용하는 새로운 발효법을 완성시킨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단팥빵은 기존의 술찐빵이나 중국의 찐빵과는 전혀 달랐으며, 물론 서양의 빵과도 달랐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팥빵은 도쿄명물이 되었으며 일일 1만5천개가 팔려나갔다. 벚꽃을 소금에 절여 단팥빵에 박아 천왕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관공서에도 납품되기 시작하였는데 일반인에게 판매되는 제품과 구별하기 위해 빵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
1905년 대만으로부터 설탕이 대량 공급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이 이루어졌으며, 빵을 사기위해 길게 줄을 서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명절에는 단팥빵을 선물하기도 했다.일본 메이지유신 시대에 군사식량으로 빵이 개발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단팥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시대 우리나라는 이러한 빵에 의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육군훈련소의 단팥빵 보급선정과정을 보면서 다시 한번 국방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조성호 김포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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