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훈민정음을 국보 1호로

최근 모 방송사가 숭례문을 대한민국 국보 1호로 지정한 부분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로 여론조사를 했다. 그 결과 유지 의견이 71.1%, 해제 17.8%,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11.1%로 나왔다. 다수 사람들이 유지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해제다.

비록 지정 순서에 따라 국보의 순위가 정해져 있다고는 하지만 1등만 기억하는 풍토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재가 국보 1호가 되어야 한다. 또한,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사유가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1933년 조선총독부가 ‘조선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공포하고 조선의 문화재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숭례문은 ‘남대문’이란 이름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숭례문을 최초로 조사하면서 조사 순위에 따라 1호라는 번호를 부여한다. 그리고 광복 이후인 1962년에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일괄 재지정하면서 국보 1호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살피면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배경에는 일본이 존재하고 있다. 의미의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국보 1호를 일본이 지정한 부분, 아울러 그를 용인하고 받아들였던 부분에 대해 기분 좋을 리 없다.

특히 석굴암, 경복궁 등 숭례문을 능가하는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개 대문에 불과한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제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필자는 현재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이 이 나라 국보 중 국보로 당연히 국보 1호에 지정되어야 한다 단언한다. 이에 대한 판단 근거로 상징 즉 역사성과 대표성을 든다. 먼저 역사성에 대해서다.

훈민정음이 세종에 의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근본이 되는 28개의 자음과 모음의 존재는 한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 나이 다섯에 세종으로부터 출세를 보장받았던 매월당 김시습은 ‘징심록 추기’에서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을 징심록에서 취하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을 담았던 징심록이 사라진 지금 그 시작을 언제라고 정확하게 지적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신라 시대 박제상임을 살핀다면 훈민정음의 모체가 되는 자음과 모음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었음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아울러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자음은 하늘 그리고 모음은 땅에서 취했다. 유추한다. 즉 자음은 하늘을 이루는 달과 별에서 그리고 모음은 자연의 기본이 되는 흙(·)과 생(ㅣ) 그리고 사(ㅡ)에서 취한 것으로 풀이한다.

다음은 대표성에 대해 살펴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필요치 않다. 이미 세상이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의 과학성에 대해 세상이 이구동성으로 찬탄하며 인정하였고 그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으로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필자는 상기에서 훈민정음이 국보 1호가 되어야 하는 외형상 사유로 역사성과 대표성을 들었다. 그러나 진짜 사유로 들고 싶은 사항은 그 이면 즉 인간의 공동선인 평등정신의 발로,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이 고스란히 배인 결정체라는 점이다.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보물 중 보물인 훈민정음을 제쳐놓고 역으로 세계가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인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한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황천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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