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음악사를 이끈 거장들의 결혼생활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예술가들은 삶이 불안정하고 정서적인 기복이 심하니 결혼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견해가 틀렸다고 반박할 수 있는 통계자료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모두 삶이 불안정하여 부부관계가 비정상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곡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는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극적인 사랑을 통한 결혼을 이뤄낸 사람이다. 한 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여인에게 교향곡(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을 작곡해 바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그의 사랑은 마침내 결혼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남다르게 열정적인 사랑은 남다르게 식어버리는 법인가? 그들의 결혼생활은 5년이 채 못되어 성격과 의사소통 등의 문제로 파경을 맞게 된다.
음악가들 중 작곡가 바그너(Richard Wagner) 만큼이나 애정관계가 복잡하고 다양했던 사람도 드물다. 그는 스물 세살 때 미나(Minna)라는 미모의 배우와 결혼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그녀는 어떤 돈 많은 군인과 눈이 맞아 야반도주를 해버린다. 그러나 새로운 애정생활이 그렇게 신통치 않았던지 미나는 바그너에게 곧 돌아와 그와 30년을 함께 살게 된다.
물론 바그너가 그녀를 받아주었지만, 그는 나이 마흔 넷 즈음에 자신을 성심으로 도와주던 후견인의 아내 마틸데 베젠동크(Mathilde Wesendonck)에게 집요하게 구애를 벌인다. 그의 애정행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십이 넘어서 자신의 절친이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Hans von Blow)의 아내 코지마(Cosima)와 부적절한 관계로 딸 이졸데(Isolde)를 낳게 된다.
사람 좋던 뷜로는 이를 용서하고 이졸데를 자신의 딸로 받아주지만, 바그너와 코지마의 부적절한 관계는 계속된다. 마침내 그가 57세 되던 해에 둘은 결혼하게 되며 코지마의 아버지였던 리스트(Franz Liszt)조차도 이들의 결혼소식을 신문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서양음악의 거장들의 결혼생활이 이렇게 파란만장하거나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음악사 최고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비록 첫 아내와 사별하게 되어 결혼을 두 번 하게 되지만 아내와 금슬이 좋았다.
이는 바흐가 자녀를 스무명이나 낳았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음악을 사보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아내만을 위한 작품집을 써준 것을 보아서도 알 수가 있다.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소곡집·Clavier-Bchlein vor Anna Magdalena Bach) 일찍이 안나 막달레나는 멋지게 오르간을 연주하는 서른 다섯의 바흐를 보고 존경심과 사랑을 키워갔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실력있는 소프라노 가수였으며 음악적인 소양이 풍부했으므로 남편과 음악을 통해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위풍당당’으로 알려진 20세기 영국 작곡가 엘가(Edward Elgar)는 지극히 아내를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또다른 유명한 작품, 현을위한 세레나데(Serenade for Strings, Op. 20)는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바친 사랑의 노래이다. 작품의 이곳 저곳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에 그의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이 오롯이 베어있다. 필자도 아내를 위한 세레나데를 하나 준비해야겠다.
양승렬 수원오페라단 지휘자·미주리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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