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어른들 죄를 대신하여 바다로 간 아이들

청소년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집단폭력으로 순진한 다수의 학생들을 자살로까지 몰아가는 악마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반면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보여준 것처럼 법을 준수하고 어른들의 명령을 따르는 순수한 천사의 모습이다. 청소년들의 공통점은 아직 어른이 아니므로 판단력이나 성숙도가 떨어진다는 것, 어른들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아 약지 않다는 점,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정도가 심해 거의 순종하듯이, 존경하듯이 따라간다는 점 등이다.

반면 어른들은 어떤가? 힘이 강한 어른, 힘이 약한 어른. 힘이 약한 어른들 중에는 청소년들처럼 보호받아야 할 성인들이 또한 많이 있다. 장애우, 여성, 가난한 사람, 성적 소수자 등 소위 사회적 약자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면 한국의 사회적 관습이 이들 사회적 약자를 어떤 시각으로 대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어른들이 만들고 어른들이 이끌고 있는 이 나라의 시스템, 사회관습 말이다. 그 문화적 매뉴얼에는 사회적 약자를 자신의 일처럼 솔선수범해서 지켜내고 보호하자는 행동지침이 없는 것 같다.

세월호 선원들 뿐 아니라 한국의 어른들은 장애우의 인권에 대해 무관심 하기는 마찬가지다. 장애우들의 버스, 택시, 지하철의 시설들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부족하고 불편하다. 여성인권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출산휴가, 생리 휴가 등을 받아야 하므로 남자에 비해 불편한 직원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집에서도 남편은 텔레비전 보고, 여자는 밥 짓는 구조가 우리 부모 세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유아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고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이코 남성들. 그들에 대한 처벌도 약하고 방비도 허술하니까 여성들은 법에 의존하기 보다 자신들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

어른들은 세월호사건을 통해 청소년들을 가장 잔인하게 대했다. 배안에 남은 청소년들을 가만 있으라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그대로 수장시켜 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체면치레만 하느라고 수백명의 잠수부가 동원되었다는 둥 거짓말만 하고, 겨우 몇 십명이 잠수하느라고 시간을 다 낭비했다.

선원들이 보여준 초동대처는 잔혹하고 비겁한 어른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윗선 어른들의 행태는 전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감선생님을 제외하곤 어떤 어른도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없었다. 차제에 어른들이 문화계에서는 또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살펴보겠다. 영화나 방송 등의 대중문화계에서 일어나는 갑을관계는 연예계가 정글의 법칙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약자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아버리는 갑의 상도덕은 약자들이 이 땅에서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느끼게 할 뿐이다. 갑을관계에서 상생이란 없다. 한국 어른들의 세계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눌러야 하는 정글의 법칙일 뿐, 동반자승객이란 생각이 전혀 없다.

아이들이 마치 죄 많은 우리 어른들을 대신하여 바다에 잠긴 것처럼 느껴진다. 바다에 있을 사람들은 우리들인데 말이다. 그들은 평온하게 우리를 바라보며 잘들 사세요, 지켜보고 있어요, 하고 묵시의 눈길을 보내는 듯하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한국의 어른들에게 상대방의 이익도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 이 5월에 우리 모두는 남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남을 위한 마음으로 나머지 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게 어른들의 죄를 대신하여 바다에 잠긴 수많은 어린 예수들을 위한 진정한 속죄의 삶일 테니까.

정재형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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