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치고 규제완화를 외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행정쇄신위원회를 통해, 김대중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는 아예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신설해 규제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성과를 보이지 않자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규제개혁을 핵심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첫 순서로 끝장 토론을 펼친 것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 투자 활성화와 고용창출, 경제성장률 증가를 꾀하겠다는 논리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건 경제활성화에 대한 갈망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이날 제기됐던 규제와 정부가 밝힌 경제분야 규제 중 2천200개가 2017년까지 풀리면 투자 효과가 수백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에 국민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규제개혁장관회의가 생중계 된 이후 정부 ‘규제개혁 포털’에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 달라는 국민의 건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연평균 300여 건이던 건의가 방송 후 2주일 만에 950여 건에 달했다. ‘열차 안 인터넷 사용 제한시간을 풀어달라’, ‘타투를 문화와 예술로 봐달라’, ‘호스텔 같은 중저가 숙박시설의 허가 기준을 완화해 달라’ 는 등 민원부터 법령개정 요구까지 다양하다.
재래시장에서 닭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포장판매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며, 이는 생선ㆍ채소 등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노래방 업주들은 캔맥주 판매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손님들이 캔맥주를 찾는 상황에서 손님을 붙잡으려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보습소 운영자는 현행 학원법상 학원은 강사채용을 할 수 있는 데 비해 똑같은 방식으로 강의하고 있는 교습소는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강사채용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은 국세기본법이 벤처기업 활성화 정책과 어긋난다며 개정을 요구했다. 현행 국세 기본법 시행령은 법인이 국세, 가산금 등을 체납할 시 친족관계에 있는 투자자가 대신 납세토록 규정하고 있다.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회사는 실패한 기업의 세금을 책임지는 규정이 없는데, 선의의 투자자가 형제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부처와 관련 공무원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규제라는 것이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가 많고, 선한 규제도 있기 때문이다. 수출기업이 제출할 서류를 간소화해 물류비를 줄여주는 건 분명한 규제개선이다. 하지만, 학교 주변에 호텔을 지을 수 없도록 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구를 들어준다면, 학생들은 어쩌겠다는 건가.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는 여성기업제품 의무구매제도는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기업인에겐 단비 역할을 한다.
국토교통부는 규제회의 후 5일 만에 푸드트럭의 제작과 개조를 허용하는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올해 7월까지 최소 적재공간을 확보하면 화물차의 푸드트럭 구조변경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자칫 푸드트럭을 양산해 애꿎은 소상공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대통령이 강력한 규제개혁의지를 나타냈다고 서둘러 규제를 푸는데만 집중했다가는 더 큰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규제개혁이 이뤄지려면 철저한 조사는 기본이다. 개별 민원 해결 식이 아닌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무분별한 규제완화’라는 비판을 듣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이번 규제철폐 의지가 철저한 검증과 사회적 합의를 거친 규제 완화, 규제 철폐로 이어져 경제활성화라는 큰 그림으로 완성됐으면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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