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황제 노역’ 사건의 시작은 특별하지 않았다. 한 막강한 재력가가 저지른 흔한(?) 조세포탈 및 횡령사건이었으며, 재판과정은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
검찰은 1심에서 징역형과 1천억 원이 넘는 벌금형을 구형하면서도, 벌금형에 대해서는 ‘선고유예’, 즉 ‘일단 좀 봐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징역형에 대해서는 집행유예를, 벌금형에 대해서는 검찰의 요구 금액을 절반으로 깎은 508억 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더 이상 항소도 상고도 하지 않았다.
‘합법’ 가장한 이기심과 위선의 유혹
이후 2심 재판부는 징역형과 집행유예의 기간을 더 줄이고, 벌금은 또 다시 절반인 254억 원으로 깎아, 결국 검찰이 원래 구형했던 벌금의 4분의 1로 만들었다. 게다가 2심 재판부는 해당 재력가에게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형에 처하도록 한다”는 깜짝 선물도 안겨주었다.
마침내 대법원은 2011년에 이 판결을 그대로 수용해 확정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장본인은 이것마저도 거부한 채 해외로 도피해버렸고, 이 사건은 국민들의 뇌리에서 조용히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전 그가 돌연 귀국해 50여 일의 노역으로 벌금 전액을 정말 때우려고 하자 여론은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검찰은 벌금을 환수하기 하기 위하여 팔을 걷어붙였고, 지법원장으로 갓 승진한 당시의 2심 재판장은 사임하였으며, 사법부는 대법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사법부가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개혁의 기치를 들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서 사법부가 ‘법률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검찰은 물론,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재판관들은 ‘법률에 근거하여 합법적으로’ 재판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답은 뜻밖에도 이 사건의 2심 재판장이 지법원장에 취임하며 발표한 연설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는 지난 2월의 취임사에서 “국민의 법감정에 부응하고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관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사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 이번 문제의 핵심이며, 그 밑바닥에는 ‘법률이 구체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것은 모두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위선적인 문자주의’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역시 ‘합법’을 가장한 이기심과 위선의 유혹을 받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형편과 감정은 무시한 채, 자신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합법적으로’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한 예로, 대중교통의 일반석에 앉았다고 해서 바로 앞의 노약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는 것은 ‘합법적’이지만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진실한 사랑ㆍ배려있어야 행복한 사회
그래서 기독교 초기의 지도자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전서 10:23-24)라고 권면했고, 야고보 선생은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서 4:17)라고 가르쳤다.
이제 우리 모두 ‘합법의 위선’을 걷어내고, 서로를 향하여 진실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가져보자. 이것이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다.
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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