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대화

미술은 어디에나 있다. 미술이란 것은 도처에 살고 있고 수시로 출몰하며 유령처럼 배회하고 사람들의 삶에, 감각에 너무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늘 너무 많은 이미지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직접 미술 작품을 만들지 않더라도 미술적 행위라고 부를 만한 일을 날마다 한다.

자신의 집안 인테리어에서부터 시작해 소소한 물건을 하나 고르더라도 디자인과 색상을 따져보는가 하면 무엇보다도 그날그날의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남의 옷차림과 치장에 관심을 기울이며 은밀히 관찰하는 일, 카페나 음식점의 실내장식과 분위기 등에 대한 품평을 비롯해 자신의 수첩을 장식하고 블로그를 꾸미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모두가 이미지 감상이자 미술체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미술과 충분히 낯을 익히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이미지 제작행위를 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일련의 행위를 미술이라고 생각지 않는 것이 문제다.

미술이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만 존재한다고 여기거나 미술을 전공한 전문가들만의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덧붙여 미술이란 것이 특정한 소재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현한 것이라는 막연한 상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아름다운 것이라고 확신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미술은 정해진 소재를 동일한 방식으로 재현하거나 아름다움이란 것을 강박적으로 구현하는 그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 오늘날 미술이란 개념을 단일한 의미로 정의할 수는 없다. 이미 20세기 들어와 현대미술 자체가 19세기 중반에 형성된 미술ART란 개념을 뛰어넘어 숨 가쁘게 진행돼왔으며, 온갖 별의 별 일들이 미술이란 이름으로 전시되고 논의되고 있음은 새삼스럽지 않다.

아울러 미술은 특정 전시 장소에만 걸려있거나 놓여있지 않다. 오히려 전시장 밖에 너무 많은 이미지들이 바글거린다. 그것들을 날카롭고 정치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그 이미지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진정한 미술인이다.

따라서 미술을 전공했느냐가 아니라 그런 시각으로 미술적 행위를 하고 있느냐를 질문해야 한다. 그러니 일반인 모두가 미술적 행위를 하는 이들이자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하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사고하고 글을 쓰고 시각적 오브제를 만드는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이들이 미술평론가나 작가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수한 시각이미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시각이미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삶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것이 결국 문화이고 예술이다.

또한 문화나 예술은 인간과 관계된 것이고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이 문화적, 예술적 대화에서 중요한 점은 인간으로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남과 다른 자신만의 삶과 견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취미일 수도, 정치이거나 예술일 수 있다.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대화하는 방식의 하나인 예술의 목표를 ‘인간개성의 실현’으로 보았을 때 남과 다른 삶의 힘이 소통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일반인이 여가시간에 이름난 먹을거리와 텔레비전만을 찾는 시기를 벗어나 자신의 삶을 즐기는 방식으로 다양한 취미와 레저 또는 예술을 찾아 나설 때 비로소 일정한 문화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서 남과 다른 애착으로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자신의 일상 속으로 미술을 끌어들이고 이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여러 방안에 대한 논의와 모색은 그런 노력에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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