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종업원은 약사 가운을 입었고, 기본 안주는 알약처럼 조제해줍니다. 실내는 약국의 내부와 똑같이 인테리어돼 있어, 마치 약국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 술집은 젊은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거리에 있고, 상당히 인기가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발상이 독특하고 재미있어 이 술집을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약사회에서는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약국이 술집과 혼동되고 있으며, 약국의 이미지를 흐려놓는다는 것이지요. 결국 구청에서는 13일간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는데, 이런 경우가 자꾸 파급될 우려가 있어 미연에 차단하는 조치였다는 것입니다. 술집주인은 약을 판 것이 아니므로 법에 저촉될 게 없고, 새로운 발상을 규제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소송을 했습니다. 이제 이 사건은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지게 됐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우리 사회에 흐르는 두 가지 기류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술집주인의 기발한 발상과 서민경제, 한편으로는 기존의 질서를 대변하는 어떤 세력들과 그들의 실리 및 명분. 이 두 가지의 이해관계는 대립하고 있습니다. 술집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술이 스트레스 해소, 즉 치유의 측면에서 약에 비유된 것입니다. 그건 대단한 인문학적 상상력이고, 평범한 술집의 이미지를 한 단계 예술적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약사회 입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좋은데, 약과 술의 이미지를 동일시한 것은 약의 신성함을 너무 무장해제시켜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유는 어디까지나 예술 안에서만 존재해야지, 현실이 되는 것은 불행입니다. 아픈 사람들이 정말로 약을 안 먹고, 술로만 치유하려 한다면 그 후유증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법이 이 사건의 본질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정에서는 법적인 측면에서만 판정을 내릴 것입니다. 대신 이 사건은 현재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의 움직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창조경제의 원동력은 발칙한 발상입니다. 일상적이며 관습적인 사고에서 창조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술집주인의 발상은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발칙한 발상과 돈벌이, 즉 창조를 이용한 경제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적 과정을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두텁다 못해 억압적입니다. 조금이라도 창조적 사고를 하는 순간 거대한 관습의 벽과 부딪치는 것을 피할 순 없습니다.
창조경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약국-술집 사건을 보면서 창조경제가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약국을 모방한 술집이 영업하는게 맞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하자는 건데 얼마나 바람직한 생각입니까? 하지만 한국사회의 관행을 하루 아침에 깨기는 쉽지 않습니다. 약과 술을 혼동하는 현상을 죽어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영업논리만을 불도저처럼 밀어 강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창조경제도 다른 제도처럼 주변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정책이란 걸 새삼 느끼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정책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창조경제가 현재 구호로만 존재하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합니다. 정부는 창조경제를 급히 실행하기 보다는, 그 밑거름이 되는 국민홍보에 더욱 더 신경써서 이해를 시키는 일부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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