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DMZ 밟고 기차 타고 유럽여행까지

1983년 KBS에서 방송된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모든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그리고 1985년 9월 21일 마침내 첫 이산가족 상봉하는 날이 왔다. 북한의 이산가족이 서울로 왔고 우리 측도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서 만난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난 9월21일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연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모처럼 여야 모두가 일제히 유감을 표명했다. 무엇보다도 60여년을 기다린 상봉 당사자에게는 또다시 깊은 상처를 남겼다.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이산가족 상봉이다. 정치적 술수가 있을 수 없는데 무슨 이유에서 반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더구나 만남을 불과 엿새를 남겨놓고 안타깝게 세상을 뜬 90세 실향민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대에 부풀었던 이산가족들과 다시 한 번 감동의 순간을 기대했던 우리 국민의 여망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북한이 당사자가 아닌데도 원망스럽다.

지난 9월 14일 오산지역발전포럼, 한국여성유권자 경기연맹 오산지부가 주관한 ‘정전 60주년, 평화기원 DMZ 탐방’을 경기도 및 오산시 어머니회 등과 함께 다녀왔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함께 간 오산 시민과 관내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250여명은 기대에 부풀었다. 며칠 후면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것이라는 것도 굳게 믿고 있었다.

한반도의 DMZ(demilitarized zone)는 우리와 북한이 군사 분계선 주위에 군사 시설이나 인원을 배치해 놓지 않은 비무장지대를 말한다. 휴전선에서 약 2㎞ 떨어진 철조망이 쳐진 곳이다. 60년 이상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다. 그곳을 사이에 두고 아직도 남북은 이념을 달리하며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 이런곳은 여기 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땅굴견학, 도라산역 및 도라산 전망대 관람, 탐방로 도보 답사, 통일의 염원을 담은 종이비행기 날리기,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제창과 통일기원 시 낭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했다. 그 중에서도 땅굴과 도라산역은 잊을 수 없다.

비무장지대는 남과 북을 둘로 나눈 분단의 상처이다. 과거의 베를린 장벽 같은 곳이 아니다. 양측이 긴장해 서로 군사력을 집중한 곳이다. 북한이 파놓은 땅굴은 기습작전을 목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를 뚫어놓은 남침용 군사 통로이다. 제3 땅굴은 1978년 10월에 판문점 남쪽 4㎞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발견됐다. 너비와 높이는 약 2m에 길이가 약 1.6㎞에 달하는데 시간당 3만여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경기도에 제1호와 제3호 땅굴이 연천과 파주에 있고, 강원도에서도 제2호와 제4호가 발견됐다. 우리는 북한에서 파놓은 땅굴을 지금은 관광명소로 활용하고 있다. 외국인들도 많이 관람한다. 땅굴은 분단의 현실과 아픔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에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들어갔다가 나오면 저절로 분단의 아픔을 깨닫고 반공의식이 솟게 마련이다. 북한이 땅굴 파는 노력과 자본을 산업에 투자했다면 구차하게 원조와 지원을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도라산역에는 경의선 철도 남측 출입국 사무소가 있다. 언젠가 경의선이 개통되면 기차를 타고 평양은 물론 두만강까지 그리고 유라시아와 유럽까지 철도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러시아와 북한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철도구간의 현대화를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의 나진항과 러시아 극동의 국경도시 하산을 연결되는 철도가 개통된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채 60여 년이 넘도록 살아온 우리 겨레가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젠가는 통일이 이루어져 DMZ도 우리가 마음껏 밟고 기차를 타고 가족들과 함께 시베리아는 물론 유럽여행까지 하고 싶다.

이권재 오산시 바르게살기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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