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년대 최은희·김지미, 60년대 말 문희·윤정희·남정임, 70~80년대의 안인숙·정윤희·장미희·유지인, 90년대 심은하, 2000년대의 이효리 등으로 이어지는 여자 스타의 이미지를 나열했지만 어쩐지 반응이 잘 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의 눈빛은 이효리를 제외하면 삼국시대 불상이나 조선시대 산수화를 볼 때의 반응과 비슷하게 시큰둥했다. 내가 다른 배우들은 차치하고 “심은하를 모르냐?”고 물었더니 학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구동성으로 “심은하가 누구냐”고 반문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심은하를 모르다니!’하는 것은 내 생각이었고 학생들은 ‘심은하가 누구?’였다. 심은하를 모른다면 ‘마지막 승부’ 청순미의 대명사 다슬이는 물론, ‘8월의 크리스마스’의 순수하고 생기 넘친 다림, ‘청춘의 덫’에서 불꽃같은 눈빛으로 뿜어낸 명대사 “당신, 부숴버릴 거야!”를 모른다는 말이다.
심은하를 모른다는 것은 심은하의 전성기 80년대 말과 90년대의 분위기를 모른다는 말과 같다. 젊은 친구들과의 소통은 이래서 쉽지 않나 보다. 젊을 때에는 중년남자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여인들과 바람피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젊고 예쁜 여성들이 많은데 왜 늙은 여인들과 스캔들을 만드는지를 알 수 없었는데, 이젠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고나 할까. 사람의 관계는 자신과 상대방의 삶의 공감대가 클수록 소통이 잘 된다. 공감대는 함께 한 세월만큼 또는 함께 반추할 지난 세월의 양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겪은 세월과 시간이 중요하다.
심은하야말로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요 그 시절의 아이콘이었는데 이젠 그 사람이 누구냐고 되묻는 지경이니 무정한건 세월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동안 수업 중간마다 딴에는 재미있으라고 얘기했던 80년대의 대학문화, 피맛길 소줏집, 청진동 해장국집에서의 일화 등등은 얼마나 지겨운 회고담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민망했다.
“내가 젊었을 때…”, “월남에서 말이야…” 등등 자기 말에 스스로 도취해 침 튀기며 떠드는 어른들의 장광설에 몸을 배배 꼬며 지겨워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이 먹으면 옛날 얘기 좋아한다더니 남 말이 아니었다. 별 수 없이 ‘꼰대’가 되었음을 확인하니 서글프다.
나훈아가 좋아지거나 아침마다 국물이 있는 식사를 찾는 등 나이 듦의 증세는 여러 가지이지만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관점이 여유로워지고 깊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 일면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의 대학자 추사 김정희는 ‘일독 이호색 삼음주(一讀 二好色 三飮酒)’라는 현판글씨를 남겼다. 어떤 연구자는 이 뜻을 글자대로 “첫째는 독서(공부), 둘째는 여자(섹스), 셋째는 술”이라고 풀었다. 섹스와 술을 좋아하는 와중에 공부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공부하는 중의 술과 섹스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며, 추사가 고지식한 선비가 아니고 솔직한 인간적 쾌락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라는 부연설명을 추가했다.
예전에 이 대목을 읽으며 추사의 인간적인 면의 발견이라 생각했으나 이젠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색을 좋아한다는 말은 남녀의 조화가 잘되어야 집안은 물론이고 여러 세상사가 잘된다는 의미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도 물론 나이 먹은 후의 깨달음이다.
김상엽 건국대학교 인문학 연구원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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