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동양화의 제작방식을 통한 이해

흔히 동양화라 하면 대개 산, 나무, 개울 등이 나열된 비슷비슷한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렇지만 비슷한 그림을 계속 그린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예술에 있어 반복이란 작가의 노동력을 낭비하고 창의력을 고갈시키며 관람자에게는 피로를 증가시킬 뿐 만 아니라 종이와 물감 등 값비싼 재료값을 날려버리니 말이다.

그렇지만 동양화는 결코 반복을 추구하는 그림이 아니다. 동양화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는 듯한 경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림 제작관습 곧 그림을 제작하는 사회적ㆍ개인적 습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전근대시기 동양에서 그림은 대체로 모(摹)임(臨)방(倣)이라는 세 가지 방식에 따라 제작되었다.

모는 진적 위에 종이나 비단을 겹쳐가며 비춰진 형상을 따라 그리는 것이고, 임은 진적 옆에 종이나 비단을 놓고 진적을 똑같이 모사해 그리는 방법이다. 방은 어떤 서화가의 예술 풍격을 본받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모는 요즘의 개념으로 하면 똑같이 복제한다는 의미이고 방은 원작의 뜻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과는 다른 느낌의 그림이 나올 수 있다.

임은 모와 방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대개 모는 초상화ㆍ종교화 등과 같이 대상을 똑같이 그려야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조상의 초상화가 낡아 새것으로 교체하려할 때 그려진 형상이 똑같아야지 달라지면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은 과거의 명작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그려내는 방식이다. 임은 원작 위에 종이나 비단을 올려놓고 그릴 수 없는 경우이거나 그림을 연습할 때 주로 사용되는 방식이다.

원작과 같은 크기의 그림이 재생산되는 모에 반하여 임은 옮겨 그릴 화폭의 크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방은 작품 크기의 제약에서 자유롭다. 세로로 긴 그림에서 뜻을 취해 가로로 긴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반대로 가로로 긴 그림을 세로로 긴 그림으로 그릴 수도 있으며 작은 그림을 크게 하거나 큰 그림을 작게 하는 등 방은 크기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모ㆍ임ㆍ방이라는 회화 제작방식은 전통을 중시하는 회화 제작방식으로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회화제작 관습의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동양의 옛 그림이 모ㆍ임ㆍ방이라는 방식에 의해 제작된 것은 동아시아의 서화 제작 관념 때문이다. 동양의 서화 제작 관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서술하되 짓지 않는다(述而不作)’와 ‘선인의 그림을 본떠서 그리면서 그 기법을 체득하는 것(傳移模寫)’을 꼽을 수 있다. ‘술이부작’은 논어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성인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자기의 설(說)을 지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논어를 보면 공자의 말씀은 큰 글씨로 되어있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시대를 달리한 해설과 주가 달려 있다. 성인의 말씀에 대한 후대 사람들의 생각이 계속 더해지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서, 시대에 따라 의미에 의미가 더해지고 논의에 깊이가 더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전근대시기 동양 지식인들의 어법도 이런 식이었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옛 고전에서 자신의 생각에 연결되는 구절을 찾아 언급하며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개진했던 것이다. 전근대시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학술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모임방의 그림 제작방식 또한 이러한 구조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의 문화를 흔히 ‘깊이의 문화’라 하는 것은 이처럼 의미에 의미가 더해지는 과정을 겪기 때문인데 그림 역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동양화는 비슷한 아니 비슷해 보이는 그림이 계속 제작되는 것이다.

김상엽 건국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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