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당신의 힐링캠프는?

설악산의 아름다운 비경을 배경 삼아 훤한 이마까지 드러난 채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이 휴대폰에 떴다.

사진 아래에는 ‘나는 힐링 중’ 이라고 씌여 있다. 건설 경기 침체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친구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산에 올라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토요일이다.

나는 주말마다 어김없이 미술관 순례를 떠난다. 그것은 내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정신적 밑거름이자 마음의 안식처를 그곳에서 찾기 위함이다.

배낭에 미술관 전시 책자인 ‘서울 아트가이드’ 와 몇 장의 전시 안내 엽서를 넣고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미술관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곳곳을 누볐지만 서울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에 자리한 소위 ‘서촌’ 은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더는 노를 저을 힘이 없어졌을 때 떠밀리듯 자연스럽게 찾아드는 곳이다.

서촌엔 올망졸망한 카페와 서점이 유난히 많다. 또 유명작가의 작품을 심심치 않게 구경할 수 있는 ‘아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시몬’, 젊은 작가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엿볼 수 있는 ‘브레인팩토리’, 예술에 대한 폭넓은 장르를 선보이는 ‘대림미술관’ 등이 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서면 푸른 남해를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사진전이 열린 ‘류가헌’, 세계적인 조각 설치작가 야요이 쿠사마의 땡땡이 무늬 작품이 시선을 잡는 ‘진화랑’, 쓰디쓴 커피는 없지만 실험 정신이 가득찬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 등도 친구처럼 나를 정겹게 맞아준다.

미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나섰던 통인시장에서 기름 떡복기를 먹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오거리 약국을 지나 누상동 쪽으로 올라가면 ‘작은 티벳 박물관’이 나온다. 그 바로 위가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옛집 터이다.

크리스마스 카드에나 나옴 직한 교회가 현대식으로 단장되어 오랜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왕산 줄기의 첫 마을이다. 정류장 의자에 앉으니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준다. 눈감으면 아이 세 명을 데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엄마의 모습도, 미군들과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젊은 아빠의 모습도 떠오른다.

나는 지금 바람을 맞으며 힐링 중이다. 욕망, 좌절, 시름과 화에 절었던 한 주간의 영혼을 뽀송뽀송하게 말리며 미술관에서 마음을 달래고, 유년의 시절을 보낸 인왕산 아래서 그 옛날을 떠 올리며 자연 치유 중이다.

지하철과 연계된 궁정동로 나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아내의 문자가 날아든다. “난 지금 백화점에서 힐링타임 중” 여러분, 당신의 힐링캠프(healing camp)는 어느 곳입니까?

 

고일영 출판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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