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공직 선배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난 그동안 충만한 삶을 살았고,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살아왔지.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굉장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때로는 후회할 일도 있었지. 그렇지만 달리 보면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정도로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지.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그것들을 끝까지 해냈었지.
청년시절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신성한 국토방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사관의 길을 택했지만 뜻하지 않게 일반 행정이라는 샛길로 걸음을 변경했지. 그러나 이보다 더 가치가 있었던 것은 난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어떤 때는 지나치게 일에 대한 욕심을 부린 적도, 원칙을 너무 강조한 적도 있었지.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을 겪는 동안 불의와 꼼수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난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해냈던 거야.
안전행정부의 전신인 내무부의 밀어붙이기 식 감사와 파견 직원의 전직을 위해 꼼수를 쓰는 행태에 맞서서 싸웠고, 2006년 벽두에는 특정인과 특정출신을 위한 끼리끼리의 인사행태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사령장 수령을 거부하고 언론에 기고를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지. 또한 안하무인의 도의원의 행태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3년이 넘는 기나긴 재판의 싸움도 해보았고, 잘못된 민선 시장의 권한행사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인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인사명령을 거부하는 등 어려운 일도 많이 있었지.
그러나 경기도 최초로 앉은뱅이 출장을 없앴고, 경기도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도 직접 만들어 시행했고, 40년 만에 바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의약분업을 위한 원활한 업무의 추진과 이천·광주·하남·여주·양평의 쓰레기를 공동으로 처리하는 전국 유일무이의 이천시 광역자원회수시설을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보람된 일들도 많이 있었어.
이제, 공직을 마무리하면서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그저 추억일 뿐이야. 때로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부드럽게 살아오지 못하고 강하게 살아온 나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아쉬움도 가져보지만 역시 나는 태어날 때부터의 DNA와 후천적 교육의 결과로 인하여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어려운 정의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따라서 내가 걸어왔던 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말투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난 내 방식대로 살았어”라고… 과연 공직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가진 게 뭐겠어? 국가와 국민을 위한 투철한 사명감이 없다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거지.
비굴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하여 하는 말이 아니라, 법과 양심에 따라 자신이 진실로 느끼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게 진정한 이 시대의 공직자가 아니겠어? 나의 경력이 말해주듯이 난 어려움을 결코 피하지 않았고 항상 내 방식대로 해결했었지. 그래 그건 바로 내가 살아온 나만의 삶의 방식이었지.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지. 이는 특히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해서 일하는 공직자의 인사가 잘못되면 나라가 거덜날 수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기도 하지. 따라서 공직자의 인사는 공정하고 합리성이 있어야 해.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선시대를 거치면서 인사의 원칙과 합리성이 많이 훼손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공직자는 입문할 때의 각오와 마찬가지로 떠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과감하게 떠날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지금까지 국가와 국민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면서 남은 인생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온 정성을 쏟아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어야 해. 난 이제 꿈에 그리던 농촌으로 내려갈 거야.
어차피 인생이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미리 연습을 해두는 것도 좋을 것이고 해서 말이야. 항상 마음속에 있는 말이 생각나네. “도심에 사는 군중 속의 고독은 사람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지만, 자연 속의 고독은 사람의 마음을 충일하게 한다”라는 말이지. 이제 온 가족이 직접 지은 벽돌집에서 365일 태극기 펄럭이며 사과나무와 함께….
2013년 6월 모든 공직을 마감하면서….
이재동 경기개발연구원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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