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모든 것의 근간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본질과 원형에서 찾아야 진실을 알 수 있다.
최근 필자의 삶을 규정한다면,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코칭교육 전과 후로 나뉜다.
외견상 달라진 점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분명 달라졌다. 정체되어있던 정신적 키가 어느새 훌쩍 자란 것이다. 삶을 관조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30, 40대를 관통하면서 필자의 삶은 성공이라는 척도로 모든 것을 재단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공신력 있는 소속사와 사회적 위치 또한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러나 늘 정신적인 허기는 멈추지 않았다. 더 큰 메이저로 진출하고 싶었고 더 큰 지위를 얻고 싶었다. 따라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정체되어있는 느낌이 지속되었고, 늘 깨어있던 의식은 언젠가부터 시들어 있었다.
필자의 답답한 마음을 눈치 챈 남편은 코칭교육을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이틀동안 교육을 받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시들어가고 있던 의식이 생생하게 살아났고, 가슴속을 꽉 채운 충일함과 수많은 영감이 떠올랐다.
11년 전 대학원 다닐 때 강의듣고 공부하면서 느꼈던 충만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담당 교수님 말씀처럼 ‘현재시점에서 3년 이내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점검해 봐야 한다’라는 말씀에서 깨달음이 왔다. 뭔가 채워가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기쁘고 에너지가 넘쳤다.
대학원 졸업 후 방송위원회 심의원, SBS 방송모니터, 대학 강사, 칼럼니스트, 논설위원, 문화원 이사로 열심히 살았다. 다양한 커리어를 쌓고 사회적 위치도 얻었지만 충전을 시키지 못한 채 소모만 했던 것이다. 교육 이후 필자가 삶을 규정하는데 한 차원 높고 넓게 바라보게 해 준 것이다.
앞만 바라보며 성공지향적인 삶을 살아온 자신에게 이제 좀 더 세상을 포용력 있게 바라보라고 내면은 속삭이고 있었다. 경쟁상대가 아닌 함께 가는 세상, 타인을 분석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인드로 바뀌었다.
함께 교육을 받았던 용희씨는 교육 둘째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사님, 어제와 오늘 이사님 표정이나 행동이 확 달라지셨어요. 어제는 얌전하게 계시더니 오늘은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시고 표정도 밝으시고… 제가 어제 생각했던 이사님이 아니세요.” “그랬나...?” 하룻만에 달라진 필자의 모습에 그녀의 판단이 헷갈릴 정도로 교육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이고 고무된 감정들이 표정으로, 행동으로, 말로 표현될 정도로 달라진 것이다.
강의를 듣고 팀별 과제와 개인 과제를 수행하면서 두뇌와 정신은 자극을 받고 의식은 열렸으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운데 처음 보는 타인들이지만 이해와 수용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제 코칭교육 받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외형적으로 달라진 게 없지만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달라졌다. 관대하고 여유롭고 너그러워졌다. 정신적 균형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세상은 어느 한 순간 변하는 것이 아니다. 가랑비에 조금씩 젖듯이 아주 조금씩 가치관이 변화하고 행동이 변화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코칭교육 자체가 필자를 변화시킨 것은 아닐지 모른다.
아마도 변화에 대한 강렬한 갈망, 조금만 건드려주면 열릴 것 같은 의식, 더 높은 차원으로 향하고자 간절히 원했던 필자의 마음을 코칭교육이 슬쩍 찔렀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코칭이 추구하는 목표와도 일치한다. 즉, 교육기간은 필자의 현재를 인식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하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자에게 행운이 있나니!’
이국진 칼럼니스트ㆍ의정부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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